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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Aug 10. 2023

11. 여행의 필요충분조건

호텔 선택의 기술

 여행할 곳들을 상상하며 어떤 숙소에 머물지 찾아보고 고민할 때부터 나의 여행은 시작된다.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심플하다. 합리적인 가격과 적당한 위치 그리고 납득할만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으면 된다. 수영장의 유무와 조식포함 여부는 호텔 선택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으로 선택에 반영된다. "이 호텔은 수영장 하나만으로 충분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면 필요충분조건을 잘 갖춘 것이다.



 아오낭에서 우리가 머무는 골든비치호텔은 해변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었다. 끄라비에서 호텔이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끄라비에 온 이유는 바다를 보기 위함이고 이왕이면 바다는 가까이서 즐길 수 있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 호텔의 또 하나의 장점은 수영장인데 무엇보다 주변 풍경과 수영장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훌륭했다. 기암절벽이 수영장의 배경화면처럼 펼쳐져 있고 수영장 둘레에는 야자수가 바람에 한들거리며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늘 아래 놓여 있는 새하얀 선배드에 누워 한낮의 독서를 즐기다가 쏟아지는 햇살을 담은 파아란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더위를 식히기에 더없이 좋은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의 깊이도 적당히 깊어서 수영하기에 좋고 물도 깨끗했다. "이 호텔은 수영장 하나만으로 충분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호텔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고 방안의 조명이 어둡고 가구가 낡은 단점은 호텔 직원들의 친절과 청결한 청소상태로 보완이 되었다.



 오전에는 호텔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어제의 일기를 쓰고 나는 어제 쓴 돈을 기록했다. 아이들도 나도 어제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 꽤나 골똘해야 했다. 일기를 다 쓴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빠져 들었고 나는 테라스로 빠져나와 책을 읽었다.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책을 가까이해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지만 그건 순전히 엄마의 바람일 뿐이라고 다른 한 편의 마음이 속삭였다. 그냥 내가 좋아서 책을 읽고, 그냥 내가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언젠가 나처럼 책에서 위로를 받고 여행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엄마도 그랬어!"라고 맞장구를 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책을 읽다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은 되도록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해가 살짝 기운 오후에 우리는 수영장으로 나갔다. 수영장에는 선배드에 누워 해를 즐기는 나이 든 부부와 맥주를 마시며 카드놀이를 하는 가족이 있었다. 우리는 야자수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한가로운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참방참방 물장구를 치고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가 숨 참기를 하고 누가 더 멋지게 뛰어내리나 내기를 하고 뭉게구름이 걸려있는 파란 하늘을 보며 수영을 했다. 근사한 여름이었다. 물에서 놀다가 지칠 땐, 선배드에 앉아 '진사람이 먼저 씻기'를 걸고 루미큐브도 한 판 했다. 보드게임을 하며 주고받는 우리들의 대화는 시시껄렁하고 평화로웠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아오낭 해변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다로 나갔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바다였다. 짭조름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물놀이가 전부였던 하루에 충분히 감사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보며 조식을 먹고, 몇 발자국 걸어 바다로 나가 산책을 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고, 야자수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석양으로 물드는 바다에 나가 다시 산책을 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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