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여행의 기술
사람마다 여행을 계획하는 방식은 다르다. MBTI의 계획적인 J와 충동적인 P의 성향을 반반 지니고 있는 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 큰 테두리를 정하고 디테일은 그날의 기분과 날씨와 상황에 따라 채우는 편이다. 방콕 여행 계획의 큰 테두리로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여행 노트에 기록하고 그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여행을 했다. 방콕 시내에서 내가 아이들과 가고 싶어서 적어둔 곳은 왓포, 왓아룬, 카오산 로드, 짜뚜짝 시장, 룸피니공원, 차이나타운 야시장, 올드타운, 짐톰슨의 집, 스쿰윗, 킹파워마하나콘, 닐슨헤이 도서관, 아이콘시암, 오아시스 스파, 쿠킹클래스였다. 방콕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매끌렁시장, 넉사두억 수상시장, 암파와 수상시장, 반딧불이 투어, 아유타야, 칸차나부리, 카오야이 국립공원도 따로 메모해 두었다. 적어둔 곳을 다 갈 수는 없겠지만 이번에 못 가면 다음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보통 하루의 일과를 마친 늦은 저녁이나 혹은 느슨하게 시작하는 아침에 구글 맵에서 방콕 지도를 펼치고 다음 날 동선을 짰다. 태국 정보는 주로 네이버카페 태사랑 Thailove에서 얻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시티 투어 일정은 하루에 두 군데 정도로 계획을 세웠다. 가고 싶은 곳이 가까이 있으면 3군데까지도 가능하다. 추억의 카오산로드-거대한 와불이 있는 왓포-새벽의 사원 왓아룬에서 일몰보기 일정은 동선이 가까워서 가능한 여행 코스였다. 카오산로드는 배낭여행 시절 방콕에서 늘 머물던 동네였고 나에게는 ‘여행과 자유’를 상징하는 거리였다. 이곳을 아들들과 오고 싶었다. 2004년 동대문 식당에서 김치말이국수를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신나는 발걸음으로 찾아갔다. 얼마나 다시 오고 싶었던 람부뜨리 로드인가! 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 분위기, 이 햇살, 이 공기. 오는 길에 BTS역에서 사 먹고 남은 오뎅국물을 버렸다며 징징거리는 둘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너무 신나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길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동대문의 위치는 살짝 바뀌어있었다. “바뀐 지 오래됐는데~”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고 “제가 오래전에 왔었거든요!”라고 대답했다. 그토록 기대하던 김치말이국수는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2004년에 방콕에서 만났던 나락아저씨께 DM을 보냈더니 "나이 들어서 그래유~ㅋㅋㅋ“라고 하셨다. 극공감을 했지만 왠지 서글펐다. '그냥 추억의 맛으로 남겨둘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방콕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원은 왓아룬이다. 이름도 이쁜 새벽의 사원. 아이들과 이 더위에 왕궁을 둘러볼 엄두는 안 나고 뿅뿅 지구오락실에서 멤버들이 간 왓포와 왓아룬은 도보로 이동가능해서 카오산에서 왓포까지 200밧으로 툭툭을 타고 갔다. 100밧 거리인데 신나게 흥정을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왓포에는 고양이 사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고양이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그림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냥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왓포의 하이라이트 와불을 감상하기 위해 사원으로 들어갔는데 진짜 개컸다. 이 표현은 첫째 아이의 일기장에 적힌 표현을 빌려 온 것이다. 입이 떡 벌어질 크기의 와불을 감상하고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새벽의 사원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태사랑에서 미리 정보를 수집하고 찾아갔다. 근처 루프탑식당은 예약도 어렵고 많은 한국인들이 사진 찍기에 바쁠 테니 public view point가 우리에겐 더 적절한 장소였다. 왓아룬 저 편으로 해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어두워질 때까지 머물렀다. 거리를 두고 홀로 앉아 일몰을 감상하는 첫째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뱃속에서 나와 언제 이렇게 컸지 라는 생각에 순간 아득해졌다.
일정 사이사이에 맛집과 가고 싶었던 카페를 넣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했다. 가고 싶었던 식당이나 카페는 구글맵에 저장해 두는데 만약 내가 있는 지역에 저장해 마땅한 곳이 없다면 구글지도에서 음식점을 검색해서 평점 높은 곳으로 가면 실패 확률이 적었다.
일출과 일몰시간에 도시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도 놓치지 않았다. 새벽의 사원에 새벽에 가서 일출을 본다거나 74층 마하나콘 전망대에 올라 일몰과 야경을 보는 일이 그 예이다. 새벽의 사원은 둘째 아이의 생일이자 칸차나부리로 이동하는 날 새벽에 찾아갔다. 여러모로 부담 있는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새벽의 사원을 새벽에 가보자고 둘째 아이에게 제안을 했고 아이는 흔쾌히 같이 가기로 했다. 새벽 5시 반 알람소리에 깨 준비를 하고 그랩택시를 불러(246B) 새벽의 사원으로 향했다. 캄캄한 도시가 이제 막 깨어나고 있었다. 새벽의 사원은 8시 오픈이라 주변을 돌며 해뜨기를 기다렸다. 아침 해를 받아 반짝거리는 왓아룬을 기대하며. 해는 떴는데 나의 기대만큼 왓아룬이 ‘찬란하게’ 반짝거리진 않았다. 아이에게 소감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으니 “딱히”라고 짧게 대답했다. 새벽의 사원은 딱히 찬란하진 않았지만 새벽의 사원을 새벽에 와 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해가 뜨는데에 내가 아무것도 기여한게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가 뜰 때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도시인의 월든 중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기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과 엄마인 나의 취향이 반영된 곳을 적절한 비율로 섞었다.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아이와 엄마 모두의 취향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콘시암의 하버랜드에서 종일 논 다음날은 내가 가고 싶은 올드타운으로 갔다. 물론 올드타운에서는 아이들이 비협조적이었지만 natthaphon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살살 달래 가며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숙소는 방콕 시티투어의 핵심이었다. 4일 동안 방콕에서 우리의 집이 되어 준 조쉬호텔은 방 크기는 작았지만 깔끔하고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것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침구도 좋고, 필요한 것만 필요한 자리에 있는 호텔이었다. 아이들도 조쉬 Josh hotel에는 좋은 점수를 주었다. 매일 아침 조식을 바꿔 먹는 재미가 있었고 귀여운 수영장이 맘이 들었다. 단 수영장은 물이 차가워서 오전 11시 정도 수영장에 해가 든 다음에 입수해야 한다. 그전에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간 덜덜덜 떨다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차가운 물을 극복할 수 있다면 작은 수영장이지만 물살을 가르며 수영할 맛이 난다. 칸차나부리에서 2박을 하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머문 호텔은 슈어스테이 플러스 바이 베스트 웨스턴 스쿰윗 2라는 긴 이름의 호텔이었다. 나나역 근처에 있어서 주변으로 이동하기가 좋았고 건물 옥상에 있는 호텔 수영장과 루프탑바는 도시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조식포함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깔끔한 인테리어 그리고 적당한 방크기는 여행을 마무리하는 숙소로 훌륭한 선택이었다.
소울일기 | 23. 1. 24
오늘 아침은 조금 시끄러웠다. 일어나자마자 엄마와 류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조식 먹으러 식당에 가서 많이 맛없는 조식을 먹고 돌아와서 조금 쉬다가 김치말이 국수를 먹으러 카오산로드에 갔다, 밥은 맛이 없었지만 동네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툭툭을 타고 왓포에 갔다. 거기에는 누워있는 동상이 있었다. 개컸다. 재미는 딱히 없었지만 고양이는 귀여웠다. 그리고 해지는 거 보려고 새벽의 사원에 갔다. 정확히는 들어가지는 않고 멀리서 지켜봤다. 많이 예뻤다. 그리고 250밧 내고 툭툭을 타고 숙소에 왔다. 꽤 흥미롭고 값진 경험을 한 하루였다.
둘째 아이와 내가 아침부터 투닥거리던 걸 보고 있던 첫째 아이가 "엄마~아무래도 여행은 길게 오는 게 아닌 거 같아! 너무 붙어있어서 자꾸 싸우게 돼. “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공감하며 잠깐이라도 떨어져내 시간을 갖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숙소 1층 카페에 남아 일기를 썼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긴 여행, 특히 도시여행은 꽤 흥미롭고 값진 경험을 안겨주지만 아무래도 피곤한 건 사실이었다.
*Thailand 사진은 Walk zine 사진집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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