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의 기술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내가 품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이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었는데 살면서 어떤 선택의 상황마다 나는 이 말을 자주 떠올렸다. 간혹 주워들은 말이 내 삶에 깊이 박혀 나를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마주한 선택의 순간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데 방향키가 되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두 단어의 나열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고 곧장 움직이게 했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했고 그렇게 고민해서 선택된 것이라면 집중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뿐만 아니라 여행의 순간에도 선택과 집중의 기술은 사용되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할지? 여행에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방콕에서 사내아이들과 딱 한 군데를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사내아이들의 의견이 우선이었다. 넓은 곳에서 공이나 차면서 놀고 싶다는 첫째 아이의 말에 #룸피니 공원이 생각났고, 룸피니 공원에서는 코모도 왕도마뱀을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 아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두 아이의 요구를 맞추는 일이 여행에서 가장 까다로운 일인데 어디를 갈지 비교적 쉽게 결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룸피니 공원까지 BTS를 타고 가려다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룸피니 공원으로 갔다. "집에 갈 때는 택시 말고 BTS타자." " BTS대신 샤이니 타면 안 돼?" "아니야 빅뱅타자!" "아니지 슈퍼주니어!"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자동차 소음으로 시끄러운 방콕에서 룸피니 공원만큼은 고요했다. 나무 그늘을 찾아다니며 코모도왕도마뱀을 구경하고 넓은 곳을 찾아 공을 찼다. 둘째 아이는 덥다며 스프링클러에 몸을 던졌다. 하지 말라는 말에 옷이 방수가 된다며 말도 안 되는 대꾸를 하고 방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냥 아이 같았다. 아이들에게 방콕의 관광명소는 크게 의미가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었던 장소는 아이들이 원하지 않으면 고집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친구들과 오거나 혼자 오면 그때 가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정을 잡고 한가롭게 다니는 것이 이번 여행의 '집중' 방법이었다. 2007년에 동행자들과 룸피니 공원을 찾아왔을 땐 우연히 로얄 방콕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게 되었는데 2023년에는 내 아이들과 코모도왕도마뱀을 보았다. 그때도 오늘도 룸피니공원은 좋았다.
"엄마! 예전에 왔을 때 여기에 코모도왕 도마뱀이 있는 건 알긴 했어?"
"몰랐지~ 이게.. 시기별로 보이는 게 다르거든."
엄마는 그때도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여행자였던 거라고 하자구나.
오늘의 맛을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맛으로 예정된 곳은 #크루아압손이라는 태국 식당이었는데 룸피니 공원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크루아압손을 가기 전에 공원 근처의 핫플레이스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기로 했다. 룸피니 공원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탓이었다. SNS에서 핫플레이스라고 저장해 둔 #Bitterman 은 인스타에서 여러 번 보았던 곳이었다. 커다란 창문과 초록 식물들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기대를 많이 한 탓일까?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떠오르는 곳이었다. 첫째 아이가 배고프다고 먹은 350밧짜리 햄버거는 맛있긴 했지만 햄버거, 작은 튀김, 코코넛 커피 가격이 730밧이 나온 걸 보니 끄라비 한식당에서 먹은 삼겹살 3인 세트가 700밧이었던 게 생각이 나서 뱃속이 편치 않았다. 그나마 둘째 아이가 크루아압손을 가고 싶다며 떼쓰는 바람에 음식을 적게 시킨 게 다행이었다. 여러 각도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우리 집 사내 녀석들은 유튜브에서 본 빨대를 늘려보는 실험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성비 안 나오는 식사였다.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서는 실패였다.
크루아압손은 우리가 방콕에서 가장 기대하는 식당이었다. 태국 여행을 준비하며 아이들에게 방콕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 위해 <뿅뿅 지구오락실>을 시청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크루아압손이 나온 걸 보며 우리도 방콕 가면 꼭 가보자고 했던 곳이었다. <뿅뿅 지구오락실>을 함께 본 건 아이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내 나름의 여행 연출이었다. 같은 콘텐츠를 즐기고, 이야기 나누고, 기대했던 것을 여행에서 함께 경험한다면 더욱 기억에 남은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다. 출연자 중 아이브 안유진이 김치찌개 맛이라고 했던 연근 커리의 맛을 내 입으로 직접 맛본 것으로 오늘의 여행은 완성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자유시간을 갖고 일기를 쓰자고 하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하는 아이들을 위해 500미터 떨어진 편의점에서 먹을 만한 것을 사 왔다. 치즈케이크도 먹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숙소 앞에 있는 카페에서 두리안 치즈케이크를 사 왔는데 첫째 아이는 한 입 먹더니 방귀를 모아서 먹는 맛이라고 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표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방귀를 모아서 먹는 맛의 치즈케이크는 내 몫이 되었다. 양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두리안 냄새가 난다며 둘째 아이는 나와 같이 자기를 거부했다. 이상하게 빈정이 상했다. "흥. 나도 너랑 안자!" 아들들이 먹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나가 사 온 수고를 알아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고맙다는 말은 못 할지언정 두리안 냄새난다고 엄마를 피하니 서운했다. 평소 같으면 농담으로 넘겼을 텐데 발끈했던 걸 보니 어지간히 피곤한 하루였나 보다고 생각하며 내일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며 1인용 침대에서 잠들었다.
류이일기 | 2023.1.23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갔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간단한 음식을 먹고 공원에 가서 코모도왕도마뱀을 보고 밥을 먹었다. 다른 데를 가고 싶어서 간단하게 먹고 메인 음식으로 먹을 연근커리를 먹었다. 맛은 끝내줬다. 또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