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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Sep 12. 2023

27. 책 읽기 좋은 동네

칸차나부리를 여행하는 기술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칸차나부리는 방콕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있는 한적한 도시이다. 별거 없는 도시에 왜 가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별거 없어서 간다고 대답해 주는 수밖에 없는 심심한 도시이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에라완 폭포도 있고 사파리도 있고 죽음의 철도도 있는 다이내믹한 도시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칸차나부리를 가야지라고 생각한 것은 번잡한 방콕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뒹굴거리며 책이나 읽으려고 한 이유였다. 태국여행 전문가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칸차나부리는 "책 읽기에는 좋아!"라고 하나같이 대답해주었다.



 조쉬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3박 짐을 챙긴 작은 캐리어를 끌고 짜뚜짝시장 근처 minibus station으로 갔다. 큰 캐리어는 호텔에 3일간 맡겨두었다. 방콕에서 칸차나부리로 이동하는 방법은 버스와 기차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버스터미널이 가까워서 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동하는 날은 긴장이 된다. 가 본 길이든 아니든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처음 가는 길이고 아이들도 함께여서 바짝 긴장이 됐다. 애들이 다칠까 봐 택시에 물건을 놓고 내릴까 봐 돈을 잘 못 낼까 봐 버스를 잘 못 탈까 봐 사기를 당할까 봐 등등 긴장할 이유는 넘쳐났다. ‘정신을 똑띠 차리자!’라고 계속 자기 암시를 했다. minibus station에 도착해서 내가 한 말은 “칸차나부리!” 이 한 단어였다. 그들은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그들을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 아저씨에게 우리가 안내되었고, 나는 다시 칸차나부리를 외쳤다.


칸차나부리? yes!

130밧 내! three 390밧. yes!

언제 출발해? now! wating here! 그러더니 그 아저씨는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식사를 마저 하신다.

 ‘지금이라며? 버스비 낸 건 어떻게 증명하지? 그냥 일단 기다려?’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도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겠지?! 괜찮아! 일단 엄마만 믿어!‘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얼마 후, 우리는 25인승짜리 미니버스에 올라탔고 3시간 정도 달려 칸차나부리에 도착했다.  예전에 여행할 때는 가이드북을 가지고 다니며 지도를 봤는데 지금은 핸드폰만 있으면 구글맵으로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편하고 좋다. 배터리 충전이 필수이고 종이 지도를 읽는 낭만은 없지만 이 부분에서는 낭만보다는 편리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썽테우(트럭택시) 기사님들이 다가왔다. 인상 좋은 아저씨와 흥정을 하고 숙소로 이동을 했다. 첫째 아이가 여행 와서 인정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 째는 "엄마는 티 안 나게 사진을 잘 찍더라!"이고  두 번째는 "엄마는 흥정을 잘하더라!"이다. 티 안 나게 사진을 잘 찍는 이유는 사진작가로 다년간 여행 사진을 찍어온 내공이고, 흥정 팁이라면 일단 원하는 가격을 불러보는 것이다.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칸차나부리 가는 미니버스


칸차나부리 숙소 사바이칸


 칸차나부리에서는 별거할 게 없어서 별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여행을 왔으니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기에 좋은 도시였다. 조식을 먹고, 어제의 일기를 쓰고, 수영장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풀고, 산책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 것이 이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이었다. 칸차나부리에서는 속도를 늦추는 여행이 가능했다. 별거 없다는 것이 주는 선물이었다.


 나는 책 읽기 좋은 도시에서 읽고 있던 책에 자주 밑줄을 그었다.

- 한 여름이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바람조차 없어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은 날이었다.

 

-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 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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