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즐기는 기술
여행을 오면 요일의 개념이 흐릿해진다. 여행 몇 일차인지가 하루를 세는 단위가 된다. 칸차나부리 3일 차이자 토요일이었다. 책이나 읽을 생각으로 온 동네이지만 주말에는 왠지 아이들과 신나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왔다. '에라완폭포를 갈까? 죽음의 기차를 타러 갈까? 사파리를 갈까? 끄라비에서 정글투어도 해봤고 기차는 방콕 갈 때 타면 되고 그렇다면 주말엔 동물원이지!' 의식의 흐름대로 동물원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론이 나면 바로 움직이는 편이다. 그랩택시를 검색하니 250밧(약 9,300원)이었고 칸차나부리 사파리 입장료는 550밧(약 20,000원)이었다. 사파리 입장료가 비싸게 느껴졌지만 방콕에서 가는 것보다 저렴해서 이 정도면 갈만하게 느껴졌다.
옮기는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그랩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님께서 돌아올 때는 택시가 없으니 본인이 동물원에서 기다리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800밧 어떠냐?"라고 제안을 하시길래 "글쎄요... 비싼데 700밧으로 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오케이! 를 했다. 여기는 태국이니까 일단 흥정은 하고 보는 편이다. 예상보다 200밧(약 7500원)을 더 주더라도 돌아오는 교통편을 확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들과 여행할 때는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사파리는 버스를 타고 입장한다. 당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동물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비록 인간이 만든 테두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화이겠지만 넓은 공간에 풀어져 있는 동물들은 편안해 보였다. 창문을 열고 사슴에게 당근을 주고, 창문 닫고 호랑이와 사자를 보고 다시 창문 열고 낙타와 기린을 만났다. 기린은 먹성이 대단했다. 버스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바구니째 당근을 먹어치웠다. 기린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기린은 왠지 모르게 슬픈 눈을 가지고 있었다. 기린을 내 손으로 쓰다듬어 본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함부로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동물들이 오물오물 당근을 씹어 먹는 모습은 귀여웠지만 당근을 먹겠다고 버스로 쫓아오는 모습, 창가에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그래도 작은 사육장이 아닌 넓은 평지에 풀어져 있으니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동물들을 보며 첫째 아이와 <긴긴밤> 코뿔소를 떠올렸다. ‘이 동물들은 행복할까?’ ‘드넓은 초원으로 가고 싶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주고받으며 익사이팅한 사파리 투어를 마쳤다.
사파리 버스에서 내려 동물원의 다른 구역에서 코끼리쇼와 악어쇼를 보았다. 코끼리 쇼를 보며 심드렁한 코끼리의 표정에 연민을 느끼고, 악어쇼를 하는 사람을 보며 '하루에 얼마 벌까?'를 궁금해했다. 동물을 다루는 쇼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했지만 '동물원 가기'는 주말의 기분을 느끼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여행에서 숙소를 예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재미있는 모험이다. 어떤 곳에서 머무는지에 따라 여행지의 인상이 좌우되기도 하고 여행의 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의 여행은 긴 여정이라 모든 숙소를 정하지 않고 이동하는 도시마다 첫 번째 숙소만 예약을 해 두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되도록 변수를 두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를 즐기는 일이니까 약간의 모험은 시도하고 싶었다. 방콕 일정 10일 중에 칸차나부리에서 2박을 하고 방콕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바람이 좋은 칸차나부리’에 하루 더 마물고 싶어 져 미정으로 남겨두었던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첫째 아이가 공을 차고 싶다고 해서 넓은 잔디밭이 있는 호텔로 예약을 했다. 콰이강이 바로 앞에 있는 숙소였다.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새로운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이미 머물고 있던 사바이칸 호텔에 연박해도 되는 것을 굳이 다른 곳으로 바꿔 본 것인데 결과는 처참했다. 첫째 아이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새로운 숙소에 갔다. 말을 잇지 못했다. 그야말로 경악을 했다. 최악이었다.”
호텔방 창문과 콰이강 풍경만 맘에 들었다. 샤워타월에 죽은 바퀴벌레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을 땐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다. 하룻밤이니깐 그냥 자자. 하룻밤이니까 잘 수 있었다. 미정으로 남겼던 하루의 숙소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며 '방콕에서 왓아룬 뷰로 할까? Moon Bar가 있는 반얀트리를 예약하고 혼자 Bar에 올라가 칵테일 한 잔 할까?' 등등의 상상을 했었는데 나의 상상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내가 상상한 토요일 저녁은 콰이강의 노을과 함께 저물었다.
소울일기 | 2023. 1. 29
나는 투데이에 일어나서 밥을 먹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쉬다가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칸짜나부리에 새로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보지 못하고 그랩을 불러서 사파리로 갔다. 거기에서 동물들을 보았다. 처음에 먹이 주는 곳에 배치된 동물들은 엄청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ZONE2에 있는 동물들은 사회에 찌든 모습이었다. 매우 불쌍했다. 악어쇼도 보았는데 걍 동물학대다. 코끼리 쇼는 그나마 나았다. 그랩 타고 돌아와서 류이 생일에 갔던 밥집에서 두 그릇을 먹고 새로운 숙소에 갔다. 말을 잇지 못했다. 그야말로 경악을 했다. 최악이었다. 그리고 공 좀 차다가 잠들었다. 힘든 하루였다.
*Thailand 사진은 Walk zine 사진집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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