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만난 천사

노처녀 성장 소설

by 유니스 황

저녁에 잠시 신사동에 가 반가운 분과 함께 와인 각 1병에 맥주 한 병씩을 마셨다. 코로나 때문에 한 시간씩 빨라진 지하철 막차 시간. 11시쯤 막차를 타야지 했는데, 입가심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는 중 서비스로 우엉 튀김을 주신 사장님 덕분에 말이 몇 분 더 길어졌다. 대충 뛰어가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했는데 1분 차이로 집까지 가는 지하철 막차를 놓쳤다.

뭐.. 할 수 없지. 적당히 갈 수 있는데 까지 가서 택시를 타면 되겠다 싶었다. 다행히 몇 정거장 전까지 가는 지하철은 몇 개 더 있었다.


12시 5분 전쯤 온수역에서 내렸다. 처음 내려보는 역이다. 택시도 안 보이고 간간히 버스들이 다니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며 네이버 길 찾기 맵을 켜고 서치를 해봤다. 뭔가 집에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여전히 다니고 있었다. 근데 정거장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버스들이 많이 서있는 곳으로 가봤다.


불 꺼진 버스 앞에 서있는 기사 아저씨에게 질문을 했더니 잘 모르셨다. 정거장 이름은 분명 맞는 것 같은데, 뭔지 잘 모르겠다. 아저씨는 내 핸드폰 지도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지나가는 다른 젊은 기사님을 불러들였다.

그 시간 내가 탈 수 있는 버스의 옵션들이 3가지쯤은 있었다. 한 번에 타고 갈 수 있는 번호를 물어보니 길 건너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지금 저기 지나가는 버스가 그 막차라고 했다.


또 다른 옵션, 플랜 B. 길 건너 다른 방향으로 가서 어떤 버스를 타고 가다 심야 좌석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말씀해주셨다. 그 심야 좌석은 가끔 여의도에서 새벽에 집에 올 때 타봤던 좌석버스였다. 새벽 2시에도 운행을 하는 효자 좌석 버스~ㅎ

근데 자꾸 갈아타는 건 귀찮아서 대충 근처까지만 가서 택시를 타야지 싶었다. 실은 이 역에서도 택시가 안 보여 버스를 타보려는 거였으니, 뭐든 상관은 없었다.


기사님이 알려주신 정류장으로 가려는데, 뭔가 길이 어려워 보였는지 설명을 하시다 함께 가주셨다. 길 건너 안쪽 깊숙하게 있는 버스 환승장 같은 곳이었다. 그곳까지 굳이 바려다 주시고는 몇 번을 타고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시 몇 번을 갈아타면 된다고 못 미더운 듯 2번이나 설명을 해주셨다. 마치 딸을 멀리 보내는 부모님처럼. 내가 뭔가 어리버리해 보였나...


지하철은 종종 타고 다니지만, 버스는 잘 안 타서 사실 좀 모르겠긴 했지만, 난 적당히 택시가 많이 다니는 근처에만 가서 택시를 타면 되겠지 싶어 기사님의 설명을 살짝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네 자리 버스를 타라고 한 당부를 듣고는 잠시 핸드폰 검색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2~3분 후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든 기사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아니~ 저 버스를 타라니까 왜 안 타셨어요~ 저걸 타야 하는데…!”

“아~ 여기 버스가 너무 많이 서있어서 잘 안보였어요. 죄송해요~”


내가 뭐가 죄송한진 모르겠지만, 아저씨의 설명과 응원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난 괜히 좀 미안했다.


“그래도 몇 분 안에 다른 버스가 바로 출발하니깐 그땐 놓치지 말고 바로 타고 XX정거장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 갈아타면 돼요.”

“네~ 적당히 그 근처만 가서 택시 타도 되니까 괜찮아요. 정말 감사해요~”

난 그의 호의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아이고~ 택시비 많이 나오는데, 그 좌석 버스 늦게까지 자주 다니니까, 놓치지 말고 그거 갈아타세요~”

말투에서 막지하철을 놓친 내가 안전히 원하는 곳에 잘 도착하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달달한 자판기 커피 향을 닮은 그의 착한 마음씨가 느껴졌다.


“ 기사님~ 저 오늘 생일이에요, 근데 기사님의 이 친절한 마음이 오늘 제 생일 선물 같아서, 덕분에 너무 좋은 생일의 시작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착한 선의가 진심으로 고마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마음의 표현을 해버렸다. 늦은 밤 자신의 작은 호의가 누군가의 생일 선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그의 눈빛도 살짝 떨리는 듯싶었다.

순간 그가 말한 버스가 왔다. 나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조금 귀찮아도 그의 지지와 응원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설명해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중간 정거장에서 내려 700m쯤의 도보를 한 후 10분쯤을 기다려 심야 좌석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왔다. 택시를 탔으면 20분이면 되었을 걸 버스를 두 개나 갈아타고 집에 왔더니 1시간이 더 걸렸다.


마침내 집 앞에 도착하니 뭔가 해낸 것 같은 기분에 신나게 내리다가 하차 태그도 하지 않고 내려 환승 할인도 못 받을 상황이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 착한 선의를 선물 받은 날이니 괜찮았다.


누가 뭐라 해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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