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괜찮아도 난 안 괜찮아

노처녀 성장소설

by 유니스 황

이번 주 코로나19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취소한 1박 2일 일정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하며 금요일부터 집에 있었다. 일요일엔 친한 배우님의 연극 공연을 멤버들과 함께 보기로 예약했었다만, 우리의 움직임이 민폐가 될까 싶어 그마저 취소했다. 이런 상황에선 함께 최대한 협조를 해야 하기에.


우유와 맥주가 떨어졌다고 잠시 산책 겸 근처 마트에 다녀오자고 언니에게 톡이 왔다. 가급적 집에 있어야 하지만 생필품이, 그것도 주말에 맥주가 떨어지는 건 다급한 일이니 집을 나서야만 한다. 암~

그러고 보니 난 20년이 넘는 독거 생활의 시간 동안 집에 쌀이 없었던 적은 좀 있어도 캔맥주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유학가 집 냉장고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코카콜라 2박스와 버드와이저 2박스를 줄 맞춰 채워 넣은 일이었다. 가끔 생수가 없어도 우유가 없어도 걔들이 줄지어 있는 것만 봐도 행복하며, 목마를 땐 물 대신 맥주를 마신 적도 많다.


여튼, 양치질만 하고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이틀간 집에 있었으니 몇 걸음이라도 걸을 겸, 할인가로 맥주도 좀 살 겸, 장바구니도 챙겼다. 비가 또 올 것도 같았다만 당장은 괜찮아 보여 마트 가는 길에 있는 시청 마당을 한 바퀴 돌아서 갔다. 비 온 후라 시청 앞 잔디가 어찌나 푸릇푸릇하던지… 감탄을 하려던 찰나, 어쩐지 거슬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40대쯤의 남자들 4명이 시청 잔디밭 안에서 신나게 야구를 하고 있었다. 소소한 캐치볼이 아닌 야구 배트에 글러브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힘껏 공을 치고 있었다. 물론 마스크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만 뭐 그건 막힌 실내가 아니니 그렇다 치자. 그래도 어떠한 팬스도 쳐 있지 않은데 그렇게 힘껏 던지고 제대로 놀면 좀 위험한 게 아닌가 싶었다. 주변엔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잔디밭 주변으론 “반려견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10개도 넘게 세워져 있는데도 자기들 개까지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물론 목줄도 없이.


주변을 도는데 야구공이 자꾸만 잔디밭을 벗어나 우리들이 걷고 있는 곳으로도 왔다. 그럴 때마다 공 주인과 개도 마구마구 목줄 없이 뛰어왔다. 잔디밭 앞 계단을 보니 먹고 버린 캔들과 과자봉다리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보아하니 분명 그 쉐리들(남자에서 쉐리나 넘으로 신분 강등 이해 요망~)이 버린 것 같았다. 그따위로 버리곤 분명 치우지도 않을 것 같아 마구 지적을 하며 부글부글하고 있으니 옆에서 걷던 언니는

“너, 순찰 나온 동네 반장님 같아~”라고 했다.


‘아~ 내가 정말 반장님이었으면 대놓고 한 마디씩 훈계질을 했을 텐데.’


한 바퀴를 돌아 나가려는 순간 다시 야구공이 날아왔다. 이번엔 진짜 우리 바로 앞쪽으로 엄청 빠르게 슝~ 하고 지나갔다. 조금만 빨리 걸었으면 딱 공이랑 만날 상황.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에서 놀란 남자가 쫓아와 수줍게 사과를 하고 그러다 막 지들끼리 눈이 맞아 좋아하고… 뭐 꽁냥꽁냥~ 하는 장면이 많다만, 난 ‘너 잘 걸렸다!’라는 마음이 훅 치고 나왔다.


“아~~ 위험하잖아욧!!!”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생각 없이 놀던 나머지 넘들도 한 번에 다 들으라는 듯이 앙칼지게.

공이 우리 앞으로 슉~ 지나갔기에 한 넘이 우리 근처로 달려왔다. 역시나 목줄 안 한 개도 힘차게 달려왔다. 난 지나면서 그가 제대로 듣게 다시 한번 소리를 쳤다.

“여기서 이러면 너무 위험하잖아욧! 그리고 여기 개도 출입금지라고 쓰여있잖아요.” 하며 더 크게 소리쳤다.


세상에 미친넘들이 워낙 많아 평소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세일러문” 같은 성격을 요즘은 어지간하면 죽이고 산다만, 날이 아직 어둡지 않았고 주변엔 시민들도 좀 있고 내가 일 때문에 자주 들락이는 시청 앞이라 살짝 무서운 게 없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내 옆엔 언니도 있었다. 혼자 다닐 때도 이런 싸움에서 별로 져본 적이 없지만, 편들어줄 누군가가 있으니 난 더욱 두렵지 않아 크게 소리를 칠 수 있었다.

뒤돌아 소리 지른 내 눈을 똑바로 보며 그 쉐리는 하나도 안 미안한 구겨진 표정으로 “어이쿠~ 죄송합니다~”라는 빈정대는 듯한 사과를 나에게 던졌다. 한번 찌릿~ 째려보고 가던 길을 가는데

“아이~ 18!!”이라는 욕이 뒤에서 들렸다.

순간 제대로 싸워줘야 하나 싶어

“쟤 지금 나한테 욕하는 거야?” 하고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쳤더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 잃어버렸네~ 18~”을 이어 말하며 마치 나한테 한 욕이 아니라는 듯 말을 흐렸다.

“아닌 척하면서 그 김에 욕한 거지…” 언니가 말했다.

짜증이 났다만 싸우고 훈계할 가치도 없는 비겁한 쉐리 같아서 그냥 지나왔다.


그런 넘들이 멀쩡한 얼굴에 삼겹살에 소주 마시며 나라를 생각하는 듯 나라가 썩었네~ 정의가 어쩌네~라는 말을 남발하며 선한 소시민인 척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참으로 한숨이 나온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다. 제발 아무 데나 쓰레기 좀 버리지 말고, 하지 말라는 것은 좀 하지 말고, 지켜달라는 것은 좀 지키며 살자.

제발 너 괜찮다고 남들 안 괜찮은 짓은 좀 하지 말며 살자.


P.S 사진은 상황이 있기 전, 한심해서 멀리서 찍은 건데 확대해도 얼굴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올렸음

IMG_1538.JPG


keyword
이전 12화생일에 만난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