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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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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n 16. 2023

내안의 너 #3

먹을 수가 없네요

콩의 존재를 알게 되고 약 2주 - 안 지는 2주지만 확인 시점에서 이미 4주 차였기 때문에 약 6주가 경과한 시점. 묘하게 비위가 약해지고 메스꺼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나만은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던 그것. 입덧이었습니다.


입덧이 어떤 느낌인지 묘사하는 표현은 다채롭습니다. 제 생각에는 글쎄요... 모든 표현이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구토까지는 하지 않았던 저지만 안 나오는 게 오히려 괴로울 지경이었거든요. 특히 구운 고구마, 안주용 강냉이처럼 고소한 냄새를 견디기 힘들었고 생선 들어간 음식도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나마 매운 음식은 좀 나았고(전 매운 걸 잘 못 먹는 사람입니다) 오이나 토마토, 과일 정도가 괜찮았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투병하시던 시기에 고생하면서 빠졌던 최저 몸무게를 다시 찍었습니다.


이 입덧이라는 게 괴로운 게 식욕도 제로가 되면 좋겠는데, 먹는 생각은 계속 납니다. 배가 고프긴 한데 막상 먹으려면 속이 안 좋고, 뭘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하루종일 먹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무슨 불교의 아귀 귀신도 아니고 먹으려고 용을 써도 먹기 힘든 시기가 있습니다.


폭탄주를 끝없이 마셔서 이미 속이 엉망이고 방금 토하고 왔는데도 다시 비우러 가야 할 것만 같은데 그 와중에 다른 폭탄주를 한 사발 더 먹으라고 하는 느낌? 새벽 4시까지 술판을 달리고 두 시간쯤 자고 나와서 다시 출근하는데 만원 전철에 시달려 속이 부대끼는 그 와중에 옆자리의 누군가가 구토를 하고 나는 남은 출근시간 1시간을 냄새와 싸우며 버텨야 하는 느낌?


뭘 생각해도 그걸 완벽하게 표현하긴 어려운데, 아무튼 그런 기분으로 출퇴근을 하자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왜 임신직원 단축근무가 필요한지, 대중교통에 임산부 배려석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초주검이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로 인해 일주일에 두어 번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부서는 해외 지점과 연락할 일이 잦아 시차 근무도 있었고, 새벽에 오는 연락도 많았습니다. 동료들에게 부담이라 팀에는 늦게 알리고 싶어서 약 3주를 버티다 결국 두 손을 들고 팀에 임밍아웃을 했죠. 다행히 임신초기 단축근무가 있어 도움을 받았습니다.


임신을 경험하며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걸음이 느려지는 노약자들이 유난히 빨리 바뀌는 신호등에 얼마나 종종거려야 하는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임산부들이 얼마나 고역일지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서슴없이 여기 앉으라며 손을 흔들던 어린 친구들. 노약자석으로 와서 앉으라며 팔을 이끌던 할머니. 저보다 더 서 있기 힘드실 것 같은데 두 번이나 사양했는데도 한사코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콩 엄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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