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2 그라뇽 → 비얌비스티야
2025.7.12 (Sat) | 25° | 7:50~14:00 (6h 10m) | 22.4km |
어제 살짝 비가 내린 뒤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볕 좋은 자리를 맡겠다고 창가 앞 매트리스를 선택했는데 잠은 볕이 들지 않는 시간에 잔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게다가 요 며칠 기온이 높아 무시무시한 일교차를 잊고 있었다. 추위에 잠이 깨어 뒤늦게 열려있는 창문을 닫아보았지만 차가운 공기를 막을 순 없었다. 얇은 침낭 라이너 안에서 덜덜 떨다 늦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이제 좀 자나 싶은데 알람이 울린다. 그제 일찍 출발한다고 맞춰 놓았던 알람이다. 오늘은 걷는 거리가 길지도 않아서 알람을 무시하고 조금 더 자기로 했다.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뜰 때마다 옆자리 사람이 자고 있길래 나도 더 잘래 하고 선잠을 반복했다. 마지막에 눈을 떴을 때 느낌이 쌔해서 일어나 보니 7시가 한참 넘었다. 나만 남았나? 둘러보니 네댓 명이 자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 당황과 위안을 동시에 느낀다. 이렇게 된 거 아침까지 먹고 천천히 출발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숙소도 예약했고 거리도 짧고 날씨도 그렇게 더울 것 같지도 않네. 덕분에 같이 아침을 먹던 마틴에게 어제 에어드롭 문제로 받지 못했던 단체사진을 전달받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약 22km 거리의 비얌비스티야 (Villambistia)다. 동네에 알베르게도 하나, 바도 하나, 심지어 그 둘이 같은 곳인 정말 작은 마을이다. 메인 경유지도 아니고 알베르게도 순례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왜 여기로 가기로 했냐 하면 동키도 보낼 수 있고 숙소 예약이 가능했고 거리가 적당한 것 같아서. 매일 숙소를 고르는 것이 피곤해서 보통은 공립 알베르게에 머무는데 문제는 공립은 선착순이고 나는 도착이 남들보다 늦다는 거다. 오늘 가는 마을은 특이하게 공립임에도 숙박예약 플랫폼에서 예약이 가능했다.
아예 늦게 출발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졌다. 오늘도 광활한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어제도 그제도 밀밭을 지나왔지만 오늘은 풍경이 더 멀리 더 넓게 보였다. 울퉁불퉁하고 긴 곡선의 노란빛. 고흐가 스페인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밀밭을 그렸는지 알 것도 같다. 앞에 혼자 걷는 사람이 주변 사진을 찍고 있길래 다가가서 '사진 찍어줄까?' 하고 물어보았다. 내 눈엔 이 멋진 풍경과 그 사람이 한 폭으로 보이는데 본인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을 테니 사진으로 남겨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내 사진도 찍어준다고 하면 찍을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다행히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아서 '부엔 까미노' 인사하고 다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첫 마을을 지나는데 나보다 늦게 출발한 마틴을 만났다. 이십 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세일즈 업무를 하다 일을 그만두고 왔다는 그는 자신의 일이 돈은 많이 벌게 해 주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고 했다.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느껴져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그럴 입장도 안되고 영어도 되지 않아서 그런 고민도 다 지나간다 뭐든 해보라는 의미로 '네 나이는 정말 어리다'고 밖에 말을 못 했다.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길래 그때의 나는 정답이 하나인줄 알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그런 네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네가 있는 거라며 오히려 조언을 해준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언어가 부족해서 끄덕거리면서 맞아 맞아 밖에 할 수 없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나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걸 보면 세일즈가 잘 맞는 거 같은데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니까.
마틴과 헤어지고 어제 땡볕에서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던 준호를 또 만났다. 카메라를 메고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길래 이 사람도 자기 사진은 별로 없겠구나 싶어서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사진기를 건네주며 작동법을 알려준다. 초점이 잘 맞았는지 구도가 괜찮았는지 흔들리진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뭐든 남기면 추억이 되겠지. 대학생이라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이곳에 왔다는 그도 붙임성이 정말 좋았다. 요즘 어린 사람들이 다 그런 건가. 내가 그런 사람들만 만난 건가. 내친김에 살고 있는 지역의 맛집도 추천받아 저장했다.
정오가 가까워 벨로라도(Belorado)에 도착했다. 바에 들러 발을 쉬어주고 허기도 채운뒤 다시 출발. 메인 스탑인 벨로라도를 지나서 그런지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바람 소리만 가득한 길을 한참을 혼자 걸었다. 두 시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인 비얌비스티야에 도착했다. 동네 하나밖에 없는 바 답게 안 밖으로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그런데 순례자는 안 보이네. 혼자 자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체크인을 하고 보니 론세스바예스에서 같은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던 프랑스 할아버지가 먼저 와 계셨다. 다른 사람은 없나 살펴보니 할아버지와 나 둘 뿐이다. 괜히 어색해서 혼자가 나을 뻔했나 싶던 차에 보르다에서 만났던 스위스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오늘은 이렇게 셋이 이곳에 머문다.
알베르게가 공립(Municipal)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지역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숙소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곳을 공립으로 지정하고 뭔가 지원을 해주는 형태가 아닐까 싶었다. 사장님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분이었지만 그만큼 몸을 더 바쁘게 움직이며 설명해 주셨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다 통했다. 후기가 칭찬 일색이라 반신반의했건만 정말 세심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저녁은 순례자 셋이 모여 함께 먹었다. 프랑스 할아버지는 처음엔 나를 기억 못 하셨지만 설명을 해드리니 곧 알아보신다. 할아버지는 프랑스어만 가능하셨고 스위스 아주머니는 독일어와 영어가 가능했다. 나는 그나마 영어가 조금 이해가 됐지만 영어로 대화를 한다면 할아버지는 알아들으실 수가 없으니 ChatGPT로 하고 싶은 말을 쓴 뒤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을 시켰다. 처음엔 사는 곳이나 하던 일 같은 평범한 대화로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이 길을 2008년에 처음 시작했으며 그 해 아내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년 뒤 세상을 떠난 사연과 함께 순례길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해 준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누가 이곳에 왜 왔는지 물어보면 괜히 진지해지는 게 싫어서 그냥 걷고 싶어서 왔다고 가볍게 이야기했다. 정말 원 없이 걷고 싶기도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살려고 하는지 왜 퇴사를 했는지 묻지도 않은 말이 술술 나왔다. 스위스 아주머니도 흉이 될 수 있는 본인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서로에게 따뜻한 한 마디씩을 나누며 미소 짓는 단체사진으로 자리가 마무리 됐다. 이것이 연륜의 힘인가. 아니면 다시 안 볼 사람에게 부담 없이 내뱉는 진실의 대화였을까.
잔잔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려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두 분이 속옷 차림으로 마주 보고 서서 창문을 닫을까 말까 대화를 나누다 내 의견을 물어보신다. 이게 가능하다고? 수영복과 속옷을 다르다고 생각하면 고정관념인 걸까. 나는 열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당황스러운걸 보니 유교걸 유전자가 더 강한가 보다. 그리고 그렇게 속옷만 입구 주무시려면 창문을 꼭 닫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곳 벽에 방명록을 쓸 수 있게 해 놓았는데 한국인 메시지도 몇 개 보였다.
' 엄마 나 잘하고 갈게. 엄마가 못 이룬 꿈 내가 해낼게'
'00야. 엄마 여기까지 잘 왔어, 나머지도 잘 걸어가 볼게.'
나는 '사장님 너무 친절하다.'라고 썼지만 마음속으론 이렇게 남겨보았다.
"엄마 나도 잘 걷고 있어! 나머지도 잘 걸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