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가지고 뭘 그래.”
“그건 그냥 네가 예민한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이 내 마음을 스쳤다.
아프다고 느끼기엔 너무 작고, 속상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시시해서 그냥 웃으며 넘겼다.
넘겼지만…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사실 그 말은, 나의 감정을 지워버리는 주문 같았다.
'그 정도쯤이야'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이런 말들은 내 마음을, 아주 조금씩 쓸어내리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표정 하나, 혹은 나도 모르겠는 공기의 결이 갑자기 마음을 긁고 지나갔다.
“그냥 농담이었잖아.”
“웃자고 한 얘긴데 왜 그래.”
“너무 진지한 거 아냐?”
그 순간은 웃었지만, 집에 와서 문을 닫고 나서야, 그 말들이 나에게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전혀 악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음은 다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남았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 문득 느꼈다.
내 얼굴이 ‘괜찮은 척’에 익숙해졌다는 걸.
누가 뭐라 해도 “그럴 수 있지 뭐” 하며 웃고, 상처받았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 내가 왜 불편한지 모르고 지나갔다.
그 감정들을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나조차 모르는 척했으니까. 그게 진짜 ‘아무 일도 아닌’ 일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분명히 '일'이었다.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작지만 날카로운 일.
감정은 반드시 큰 사건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때로는 "에이, 뭘 그런 걸로”라는 말 안에, 수년간 꾹 눌러둔 마음의 파편이 숨어 있다.
나는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할까 봐, 그리고 그걸 드러냈을 때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늘 “괜찮아, 나도 별일 아니야”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 말은 결국, 내 마음을 외롭게 만드는 주문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들여다보지 않는 곳에, 나 혼자 서 있게 만드는 말.
그래서 요즘은, 작게 상처받은 마음도 그대로 두지 않으려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아까 그 말, 좀 서운했어.”
“나는 그럴 때 마음이 다쳐.”
말로 꺼내면, 신기하게도 마음속에서 엉겨 있던 감정이 조금씩 풀어진다.
상대가 꼭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내가 내 감정을 이해하려 했구나’ 싶은 위로가 따라온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나를 지지해 준다.
상처는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는 이보다 더 아픈 일을 겪었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일이라고 해도, 내 마음은 그 순간 분명히 다쳤다.
그 사실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다시 나를 꺼내어 안아줄 수 있다.
감정은 조용히 쌓이고, 아주 사소한 날 터진다.
그게 바로 ‘울컥’이 되고,
‘쓴맛’이 되고,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어제의 어떤 말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다.
아무 일도 아닌 줄 알았지만, 그건 내 마음엔 충분히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그 감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래, 다쳤구나. 괜찮아. 그 말, 너한테는 아팠구나.”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에게 정직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