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움직일 때, 마음은 따라온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감각과, 그것을 살아낸다는 감각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상담 장면에서도, 개인적인 삶에서도 이 차이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삶을 말로는 수없이 묘사할 수 있지만, 그 삶을 향해 움직이는 데는 어딘가 모를 두려움과 저항이 있다. 알고 있지만 하지 않는 것. 그 간극은 때로 깊은 좌절로 이어진다.
어느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할지 다 알아요. 그런데요, 몸이 안 따라줘요.” 그 말에 담긴 감정은 실망이 아니라, 자책이었다. 그는 생각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분석해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분석이 그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생각을 설득하지 말고, 당신의 몸을 설득해보세요.”
그날 이후 그는 산책을 시작했다. 처음엔 단 10분이었다. ‘오늘의 나는 바람을 느끼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밖으로 나갔다. 한 달 뒤 그는 말했다. “요즘은 생각이 예전처럼 저를 끌고 다니진 않아요. 걸을 때는 그냥 내가 나인 것 같아요.”
나는 종종 ‘행동은 인식의 근육을 기른다’고 표현한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확장될 뿐이다. 하지만 행동은 그 생각을 신체화시킨다. 몸을 통과한 생각은 신념이 되고, 태도가 된다. 그 태도는 결국 삶의 리듬을 바꾼다.
또 다른 내담자는 오랜 시간 우울감에 시달려왔다. 약물 치료도 병행하고 있었지만, 무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언제나 실패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매일 한 가지 작은 일’을 실천하는 계획을 세웠다. 목표는 ‘내가 나에게 증명해주는 하루’였다.
첫 날 그는 “컵을 씻었어요. 나를 위한 컵 하나요.”
둘째 날, “산책은 무리였고, 창문만 열었어요.”
셋째 날, “음악을 틀고 1분간 흔들어봤어요.”
그의 표정은 점점 달라졌다. 그는 말했다. “몸이 뭘 하고 나면요, 마음이 따라와요.” 그 말은 나에게 오래 남았다. 행동은 정서의 스크립트를 다시 쓰게 만든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경험이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상담이 끝난 날, 나는 늘 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깊은 이야기와 감정의 에너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의식을 만들었다. “마무리는 고요하게.” 상담이 끝나면 창밖을 1분간 바라보며, 내 호흡에 집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 1분이 쌓이자 하루의 에너지가 다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상담자’라는 페르소나에서 천천히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건 곧 나의 일상 회복력이 되었다.
삶은 행동의 축적이다. 아무리 정교한 통찰도, 살아내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리고 행동은 나를 설득한다. 나는 오늘도 내게 말한다. “생각 말고, 한 걸음을 내디뎌보자.” 그 한 걸음이 나를 바꾸고, 나를 회복시키며, 나를 내 삶으로 이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알고 있으려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살아낸 하루의 리듬’이다. 생각이 아닌 움직임이, 논리가 아닌 리듬이, 나를 바꾸는 가장 정확한 증거다.
행동은 나를 설득한다.
그리고 그 설득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