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해석을 멈추고 존재로 살아가는 실험
“나는 왜 또 이러는 걸까.”
“왜 이렇게 반복하지?”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자로 일하며 내가 가장 자주 던졌고, 또 내담자들도 가장 많이 꺼낸 질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질문이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함정일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자기 해석은 때때로 자기 구속이다. 너무 많은 이유를 찾다 보면, 존재 자체가 분석의 대상으로 바뀐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해석하는 삶이 된다. 내 모든 행동이 어떤 심리적 패턴의 결과로 해석되고, 결국 나는 또 나를 문제 삼는다.
‘왜’를 자꾸 묻는다는 건, 여전히 내가 ‘정상적인 무언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니 자꾸 나를 설명하려 하고, 고치려 하고,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진짜 치유는 때때로 ‘이해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한 내담자는 불안할 때마다 일기를 썼다. 그는 늘 자신의 감정 상태를 분석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쓸수록 더 혼란스러워져요. 왜냐면 도대체 뭘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냥 살아보는 건 어때요?”
그 순간 그는 멈칫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살아도 되나요?”
그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상담자로 오래 일할수록 나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해석이 쌓일수록 정작 살아있는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내 안에서 목소리를 잃은 존재가 있었다. 그는 단지 느끼고 싶었고, 단지 움직이고 싶었고, 단지 고요히 머무르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어떤 이유도, 어떤 의미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여기의 존재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3부의 마지막에 나는 이 말을 나에게 다시 건넨다. \_“나는 왜 이럴까”\_를 멈추자.
그 대신,
“나는 지금 어떤 움직임에 이끌리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가?”
이 질문들은 나를 문제의식에서 존재의식으로 이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무의식의 반복 안에 있고, 여전히 틀 속에서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계속해서 해석하는 대신, 그냥 그 상태로 살아보고 싶다. 한동안은 ‘나를 설명하지 않고 살아보는 것’이야말로 **실존적 실험**이라고 느낀다.
나는 오늘도 이런 실험을 해본다. 누구를 만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냥 너답게 있어도 돼.”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속삭인다. “분석하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보자.”
이 실험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생각보다 해방적이다.
3부를 마치며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자기를 그만 해석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기가 된다.”
이제 4부로 넘어간다. 존재를 넘어서, 실천하는 정신을 향해.
그곳에서 우리는 해석을 넘어 행동하는 인간으로 다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