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 반복의 형식을 자각하는 기술
반복은 늘 일상 속에 숨어 있다. 하루를 돌아보면 비슷한 장면, 비슷한 감정,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그 반복이 ‘익숙함’이라는 이유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하다는 건 안정이 아니라, 자각을 방해하는 심리적 위장막일 수 있다.
나는 요즘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그 ‘틀’은 단순한 습관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과거의 생존 전략일 수 있고, 특정 관계 안에서 학습된 반응 패턴이며,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적 사고 구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틀’이 이제는 나를 구속하고 있다면, 그것은 해체의 시기를 맞은 것이다.
내가 반복하고 있는 틀을 자각한 계기는 한 번의 글쓰기였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려 했는데, 자꾸만 피상적인 언어가 나왔다.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검증받기 위해 쓰는 듯한 문장들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또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틀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 글은 나의 내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반응을 먼저 상상하며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건 단지 글쓰기 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존중받고 싶은 아이’였고, 늘 눈치를 보며 자란 아이였다. 내 사고의 기본 회로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감지하고, 거기에 맞춰 ‘기능적으로 행동하는’ 방식이었다. 그 틀은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나를 무사하게 해줬지만, 동시에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한 내담자도 비슷했다. 그녀는 늘 남의 기대를 먼저 파악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하는 대신, 타인의 기대에 맞춰 역할을 고정하고 스스로를 해석했다. 그녀가 말한 인상 깊은 문장이 있다. “제가 뭘 원하는지 말하면, 사람들이 떠날까 봐요.”
이 말은 결국,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드러낸다. '욕구를 말하면 버림받는다'는 무의식적 신념. 그래서 항상 참고, 양보하고, 결국은 터지는 감정. 그 구조가 반복되었고, 각기 다른 인간관계 속에서 같은 결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진심인가, 반응인가?
지금의 행동은 자유로운 선택인가, 과거의 반복인가?
나는 지금 어떤 생존 전략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사용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나를 다시 나에게 돌려보내 준다. 그리고 그 돌려보냄 속에서, 나는 ‘나를 반복하고 있는 것’과 ‘나를 살아가고 있는 것’의 차이를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한다.
사실 ‘틀’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내 안에 뿌리내린 심리적 근육이다. 하지만 그 틀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틀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는다. 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작동한다. 무의식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며 ‘동행’하는 기술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나는,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 대신, 지금 여기에서 선택하겠다.”
이 선언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나를 반복의 길에서 한 걸음 비켜나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쌓여, 나는 ‘틀의 인간’에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