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아닌 구조를 해석하는 감각

감정에 빠지지 않고 구조를 읽는 훈련의 시작

by 석은별

“상대가 나에게 너무 모질게 말했다.”

“그 상황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또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우리는 이런 문장으로 자신의 고통을 설명한다. 대부분은 감정을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해석한다. 하지만 감정은 결과다. 원인은 더 깊은 곳에 있다. 바로 관계와 심리의 구조다.


상담자 훈련 중, 내가 가장 오래 배운 것도 이 지점이었다. 내담자의 말에 담긴 감정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유발하는 반복되는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 그 구조를 보는 힘이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감정에 ‘빠지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내담자는 매번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상대가 무례했음에도, 그는 스스로를 먼저 의심했다. 그 감정에는 죄책감, 위축, 수치심이 얽혀 있었다. 감정만 따라가면 계속 안쓰러워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반복해서 이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은 항상 자신을 먼저 의심하죠?”


그 안에는 어릴 때부터 배운 구조가 있었다. ‘부모의 기분이 나쁘면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이 구조가 그대로 현재의 인간관계에 투영되고 있었다. 감정은 그 구조 위에 생성된 파도였다.


나 역시 그랬다. 관계에서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들면, 그 감정에 휩싸였다. 그런데 감정을 잠시 옆에 두고, “지금 어떤 구조 안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가?” 라고 묻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항상 참다 결국 폭발한다’는 내 감정 구조는 ‘표현하면 거절당한다’는 오랜 신념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 신념은 ‘모든 갈등은 위험하다’는 더 오래된 구조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감정을 해석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감정은 항상 정직하다. 다만, 그 정직한 감정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대화할 수 있게 된다.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지금 어떤 구조 안에서 발생한 것인지, 내가 반복하고 있는 역동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은 우리를 감정의 물살에서 구조의 지형도로 옮겨준다.


한 내담자는 상담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이렇게 말했다.

“제가 늘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있었네요. 그건 상황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제가 늘 같은 방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어요.”


그건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각도문제다. 감정을 중심으로 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구조의 관점으로 이동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이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감정이 솟구칠 때마다,

“지금 나는 어떤 구조 안에 있는가?”

“이 구조는 언제부터 형성되었는가?”

“내가 감정으로 이해하려는 이 상황을, 구조로 보면 어떤 그림이 되는가?”


이 질문은 나를 깊고 조용한 자리로 이끈다.

감정에 잠기지 않고, 감정을 따라 구조로 들어가는 감각.

그것은 내가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내면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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