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하는 사람 vs. 살아내는 사람

정신의 체류에서 행동의 실천으로 이동하는 순간

by 석은별

나는 꽤 오랜 시간, 생각하는 나와 살아가는 나 사이를 오갔다. 정신의 힘을 믿었고, 사유의 깊이를 삶의 진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이 내 삶을 충분히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정신은 깊어지는데, 삶은 그대로일 때. 그럴 때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는 거지?"


내담자들도 자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상담실에서 통찰하고 울고 결심까지 했지만, 일상에서는 반복되는 관계 패턴, 똑같은 감정 반응, 달라지지 않는 삶.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 무엇을 다르게 해보셨나요?"


‘안다’는 것은 변화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실행'이 만들어낸다. 나는 어느 날, 문득 내 일기장 한 귀퉁이에 이런 문장을 썼다. "나는 살아내고 있는가, 생각만 하고 있는가." 이 문장은 나를 직면시켰다. 나는 치열하게 사유했지만, 정작 행동은 기존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인식은 있지만 실행은 없는 상태. 나는 '고요한 실패' 속에 서 있었다.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작은 루틴 하나를 실천한다. 물을 마시고, 창문을 열고, 몸을 스트레칭하며 묻는다. “오늘은 어떤 리듬으로 나를 살아볼까?” 이것은 사유의 문장이 아니다. 실천의 질문이다. 나의 정신을 몸과 시간의 결로 데려오는 리추얼이다. 내가 나를 설득하는 하루의 출발점이다.


한 내담자는 매번 똑같은 직장 스트레스를 상담에서 풀어놓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별 말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는 그냥 일찍 퇴근하고, 도서관에 갔어요. 그랬더니 이상하게 화가 안 났어요.” 그는 더 이상 문제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과 삶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그의 행동을 축복했다. 그때의 변화는 생각의 힘이 아니라, 움직임의 변화에서 출발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내담자가 있다. 암 치료를 끝낸 후 6개월이 지나고, 그는 깊은 공허감에 시달렸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삶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나는 그에게 욕구를 명료하게 표현해보기를 실천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나는 나를 살리고 싶다’는 한 줄을 써내려갔고, 그 말이 눈물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 한 문장에서 출발해, 하루에 한 번 자기를 지지하는 문장을 써보는 ‘자기 설득 실험’을 이어갔다.


“오늘 하루는, 내 마음을 돌보는 날.”

“나는 지금도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처음엔 그저 글쓰기처럼 보였던 이 실천은, 점차 그의 삶의 태도를 바꿔갔다. 그는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 문장으로 나를 붙잡을 수 있어요.”


그는 자기 삶에 대해 정리된 언어로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았지만, 그 작은 글쓰기 실천이 내면의 공허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이게 명상이 되는 걸까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아니라, 살아낸 하루가 그를 변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유는 여전히 그의 내부에 있었다. 그러나 삶을 바꾼 건 단 하나의 문장을 따라 살아보려는 실천이었다. 생각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하루는 나를 바꾼다. 정신의 체류에서 행동의 실천으로 이동하는 이 작은 진동이, 바로 살아 있는 정신의 시작이다.


4부는 그 훈련을 위한 기록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하는 나’를 떠나,

‘살아내는 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걸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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