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동에는 멈춤이 필요해.
20년 우정이 무너지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토록 깊게 파고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내 학창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한 이들이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면서 새로운 자아들이 형성되었고 그 모습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도 새로운 자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혼자는 외롭고 얼떨떨하지만 둘이 셋 되고 넷이 되고 그 이상이 되면 어떤 집단에서는 막강한 힘이 될 때가 있다. 여상에 진학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하지만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 "K-장녀" 또는 "K딸"들이 많았다.
IMF를 겪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다. 그만큼 똘똘한 친구들도 많았고, 바로 취업했지만 이후에는 야간대를 다니거나 편입을 하거나 또는 4~5년 직장 생활하다 캠퍼스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의대를 진학했다는 기적을 듣기도 했고, SKY에 들어가 고생 끝에 교수가 된 친구도 있다. 어떻게든 자기 삶을 잘 살아내고 있던 또래들이었기에 건너 건너 듣던 소식은 또 다른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계모임을 통해서 만남을 유지하던 중에 한 친구의 결혼 소식이 들렸다. 간호대를 들어가 간호사가 된 친구가 종합병원에 취업해 멀리 떨어져야 했을 때 "거기 가서 꼭 의사랑 눈 맞아서 연애해! 결혼까지 하면 더 좋고!"라고 응원을 보냈다. 그 친구가 의사랑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결혼하면 더욱더 못 만날 것 같은 아쉬움에 모두가 서울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예비신랑이 친구를 아껴주는 모습에 부러움도 안도감도 동시에 들었다. 연애담을 들을 때는 예비신랑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안도감으로 내려오던 길에 나는 인간의 본성은 정말 악하구나! 를 발견하게 됐다.
"야. 그거 다 쇼 같지 않아? 솔직히 생각해 봐. 의사가 뭐가 아쉬워서 간호사랑 결혼해. 아마 OO이 얼마 못 살고 이혼당할걸? 솔직히 둘이 수준차이 나지 않겠어?"
귀를 의심했다.
"날 잡은 애한테 이혼당할 거라는 거 그거 아무리 속엣말이라도 입밖으로는 내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우리끼리니까 이야기하는 거지. 내가 어디 가서 그러겠어!"
"나도 조금 불안 불안하긴 해. 의사가 의사나 더 전문직들하고 결혼하지 무슨 간호사야. 둘이 사고 쳤겠지. OO이 임신한 거 아닐까?"
대화를 먼저 꺼낸 A와 그에 맞춰 임신까지 상상하는 B의 말에 귀를 씻고 싶었다.
"결혼하면 OO이 별로 보지도 못할 건데, 계모임 계속 유지할 건지 물어봐야겠네. 아니면 계 깨고 우리끼리 다시 할까?"
B는 더욱 불을 붙인다.
그런 분위기가 한두 번은 아니었기에 충격인 건 아니다. 다만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하하 호호하며 친구를 잘 부탁한다던 우리였는데 아무래도 이 모임에서 나는 오래가지 못하겠다는 것만 짐작했다.
친구들 앞에서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거나 노선을 정리하지 못한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그 모임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궁리하는 시간이 많았다. 모임이 있으면 회사에서 바쁜 일이 생겼다고 둘러대는 것도 질릴 때쯤 B는 우리 집 근처로 장소를 잡아서라도 모임을 이어가려고 했다.
나는 종종 내 마음속에 있는 악마들의 소리를 들을 때면 소름 끼칠 정도로 고모와 B의 사고방식이 맞물려 있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이 실제로 내 귀에 들리도록 했던 본성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뒤에서는 타인의 행복을 시기하고 질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더욱 나를 드러내는데 움츠려 들었고, 내 근황이든 생활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가십거리에 먹이를 준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듣는데만 치중했던 것 같다.
귀를 씻어야 할 에피소드들은 더 많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나약하고도 악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수록 나는 아닌 척하기 위해, 그들의 생각대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고상해 지기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경멸하는 그 목소리에 대응하기 위해 예의를 갖추고, 교양을 쌓아야 했고, 지적 능력을 높이는 것에 가치를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는 나도 물론 주변에 '신뢰'를 형성하게 됐고 그 신뢰가 B의 알리바이가 된 것을 알고 나서 그 모임에서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다.
B의 외도에 내가 알리바이가 된 것을 알게 되면서 다른 C나 D에게 그들의 경험을 물었고, "친구끼린데 뭐 어때?"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B의 남편이 "오늘 너랑 만나서 저녁 먹는다고 하던데 전화를 안 받네. 옆에 있으면 좀 바꿔줄래?"라고 전화가 왔고 "B랑 좀 전에 헤어졌어요. 전 집이에요."라고 대답한 뒤 B에게 연락했다.
"너! 앞으로 내 이름 팔지 마. 나랑 만난다고 나가서는 니 남편 전화도 안 받고 뭐 하자는 거야! 그 사람하고 끝내던가. 아니면 나랑 끝내던가. 근데 오늘 보니까 넌 나랑 끝내야겠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라고!"
단톡방에다 계비 정산해 달라고 했다.
친구사이에 이해도 못해주냐고, 갑작스러운 내 태도에 실망했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대꾸하지 않은 것은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 B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후회는 없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1년도 안된 어느 겨울에 그녀들이 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동시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올렸다.
"우리 우정 영원하자. 가족보다 더 진한 우정!"이라는 그 문구를 봤다.
일일이 눌러서 차단했다. 그래도 세월 지나 별일 없으면 자연스레 만나지겠지라는 그 기대를 가진 나를 달래며 그 멤버들을 차단했다.
본성에 정답은 없다는 걸 안다. 다만 "이건 아니잖아!"라고 들려오는 그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루어야 될 일은 어떤 것도 없다는 것에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 멤버에서 튕겨나기 전에 언제든 이탈할 준비를 했기 때문에 기회를 잘 잡아서 스스로를 구했다고 본다. 다만 오랜 시간을 의지하던 그 허전함에 홍역을 앓듯 아파야 했다. 대부분을 나를 갉아먹으며 그들을 이해하려다 문득 내 속에서 나를 째려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닌 건 아니라면서 왜 걔네들 이해하려 드는 건데?! 다시 만나고 싶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걔네들이 사과라도 하길 바라는 건가?"
스스로를 방치하는 습관이 다시 발동했던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잘했네. 그렇게 안 했으면 불편한 만남으로 정신이 더 피폐해졌을 거야. 계속 인연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멤버들이야..."
그제야 째려보던 그 시선이 느슨해진다. 내가 나를 달랬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애들처럼 B를 감싸주지 못하겠다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던 내가 "나다운 모습"이라서 마음에 든다.
나는 "이건 아니잖아!"가 참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