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눈이 없어야 했어

그래야 우리들을 만났을 테니까

by 석은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사람 보는 눈이 아주 조금 트였는데, 그것도 순전히 경험과 노력을 통해서다.

우선 나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했어야 했다. 그렇게 알아낸 나에 대한 파악이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과 드라이브하던 중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어요?"라고 딸이 묻는다. 전에는 어떤 조건에서라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 지금의 뇌상태를 들고 간다면 어느 시절이든 가도 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시절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혹시 이 상태로 돌아가서 가장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냐고 묻길래


"사람 보는 눈!"이라고 말했다.


사람 보는 눈으로 괜찮은 사람을 발견했겠지.

그때의 나는 결핍을 채워 줄 사람을 찾았지 괜찮은 사람을 볼 줄 몰랐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따라오는 아들의 대답은...


"엄마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어야 우리를 만날 수 있었어.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면 아빠를 못 만났을 거 아냐?"


그제야 알게 됐다.

아들의 말에서 씁쓸했다. 남편과 나 사이가 잉꼬부부는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종종 '그런데 두 사람은 왜 결혼했어?'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는데 아들이 그 말을 굳게 믿고 있었나 보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면 남편을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럼 자기들은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 내가 말할 때는 몰랐는데 아들 입을 통해 들으니 해머로 맞는 기분이다.


그 순간 내 마음에게 물었다. 난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남편을 만난 걸까? 내 마음 저 밑에서는 아니라고, 사람 제대로 볼 줄 알아서 인복이 많았던 거 기억 안나냐고 소리친다.


"어! 나 그때도 사람 보는 눈이 있었나 봐. 나는 내 결핍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과 잘 얽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결핍 때문에 아빠가 의리 있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좋아했을지도 몰라! 엄만 사람을 고르는 능력이 부족했던 거지 사람을 보는 눈은 정확했던 것 같아!"




엉뚱한 대화가 오고 가면서 깨달았다.


나는 아주 어려서도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매번 정확하게 찾아냈음을 알았다.


내가 심통을 부리고 싶으면 그걸 대신 욕할 수 있는 친구를 알고 있었고

내가 막히는 문제가 있으면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사람을 찾아갈 수 있었고

내게 좋은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고

내가 가장 슬플 때 아무 말 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다만 여러 방면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여태 결핍 때문에 독이 되는 사람들과 얽혔다고만 여겼는데, 어쩌면 내가 그들을 발견할 것이구나!


나는 여전히 나를 잘 모르고 지내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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