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내가 언니야

상실감을 대하는 자세_엄마에게 쓰는 편지

by 석은별


엄마에게!


드디어 내 나이가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나이를 앞질렀어.

이젠 내가 엄마보다 지구생활의 시간이 더 오래됐어.

한때는 엄마의 나이가 된다는 것에 복잡한 감정이 엉켜서 무슨 마음인지 몰랐던 때도 있었지.

6~70대 어르신들의 부모도 여전히 살아계신 경우가 있는 100세 시대에 나는 20대 중반부터 고아로 지내다 보니 종종 그들의 경험이 궁금할 때가 있었어.


그럴수록 엄마에 대해서 다 이해하기 어려웠고 '내가 엄마보다는 잘 살 거야!'라는 마음으로 나 혼자 경쟁했어.

엄마처럼은 나약하지 말자.

엄마처럼은 아프지 말자.

엄마처럼은 여리지 말자.

엄마처럼은 못 대게 살지 말자.

엄마처럼은 철없지 말자.

뭐든 엄마보다 이상 되려고 나 혼자 싸웠지.


그 마음으로 결혼생활 하면서 나 혼자 엄마 욕도 많이 했어.

"나는 되는데 왜 엄마는 안 됐던 거지?"

그렇게 나 혼자 엄마랑 싸웠다가 이해했다가 화해했다가 하는 세월을 보낸 게 20년이네.


그러다 알게 됐지.

엄마 나이가 되던 그해에 왜 그렇게나 불안하고 무서웠는지.

혹시 나에게도 단명하는 운이 와서 엄마 나이에 아이들을 두고 가버리는 사고가 일어날까 봐, 또는 병이라도 찾아올까 봐, 또는 나 혼자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두려웠어.


그 시기만 지나면 나는 왠지 더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시기는 마치 빙판에서 휘청거리다 넘어지지 않으려 버둥치는 그런 모습처럼 불안했어.

더 긴장했고, 더 예민했고, 더 주변을 살폈지.


그러다 알게 됐지.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라고 붙잡고 살아온 게 이제는 원망할 모습조차 없는 시기란 걸 말이야.

엄마의 20대, 30대, 40대, 그리고 마흔다섯을 기억하면서 '그렇게는 안 해!'라고 다짐하던 게 이제는 떠올릴 모습이 없었어.


이젠 뭘 떠올리면서 혼자 싸우지?

이젠 뭘 원망하면서 버티지?



그러다 알게 됐지.

'이제 진짜 보내줬구나'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고, 괜히 버티려고 하지 않더라.

엄마랑 상관없는 내가 되고 있었어. 엄마랑 다른 내가 만들어졌더라.



그러다 알게 됐지.

드디어 뭔가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드디어 온기가 돌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알던 것들이 이젠 마음으로 감각으로 저절로 경험되고 있어.

푸근하게, 그윽하게, 흐뭇하게, 여유롭게...

그렇게 되고 있어.


이젠 내가 언니야.

어느새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도 스스로 잘 살아내고 있더라.

그렇게 앞으로도 잘 살아가볼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