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감도 유산이 되는구나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화가 났다.
아니 어제 자기 전부터 '모든 게 갑자기 다 멈춘다고 해도 더 이상 여한이 없다. 그냥 다 사라져도 상관없다.'라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새롭게 시작되는 날을 또다시 싸워야 되는가 싶은 지친 마음에 화가 이어진 것이다.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서로 반대되는 성격의 두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부딪혀야 되는 부분은 가치관이었다.
뭐든 '해봐야 상관없다. 자기 꼴을 알고 어설프게 덤비지 마라.'는 말이 왜 그렇게 멋지게 들렸을까. 호기심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나에게 그 말은 인생을 더 산 사람의 엄청난 조언 같았다. 부딪히고 깨지는 것은 피하게 만들고 할 수 있는 일에만 매달리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게 멋지게 느껴졌다.
그러나 본성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웃지 못할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는 사이 누군가 나에게 남긴 피드백이 과히 충격이었다.
'마치 자아가 없는 사람 같아요! 남편 말이라면 다 맞다고 여기는 건 왜 그런 거예요?'
십 수년 전에 내게 그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분명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고군분투 한 흔적이 꽤나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알다 보니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나온 길의 매 순간에 충실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보다는 좀 단순하게 살고 싶은 열망이 있다.
예를 들어 명품 가방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여유가 있다면 바로 사면되지만 여유가 없을 땐 내가 왜 그 가방이 사고 싶은지를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져야겠다면 돈을 모은다. 돈이 모이면 산다. 그리고 오랫동안 갖고 다닌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명품가방을 눈여겨보는 순간 '사치다. 허영이다. 괜히 남들 눈 의식해서 그러는 거다. 원재료는 얼마 안 한다. 그 돈이면 다른 거 하고도 남는다. 애들이 보고 배울까 봐 걱정이다.'등으로 가방을 갖고 싶은 욕구를 부정한다. 대부분 그런 식으로 욕구가 무산 됐다. 그 과정을 오히려 남편이 현명하니까 더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런데 자아가 없는 사람 같다는 그 말에서 남편이 달리 보였다.
물론 그 말이 선뜻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부끄럽고 들킨 마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 맞다! 정확하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명품가방이 갖고 싶으면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원래의 내 방식대로 했다. 물론 뒤늦게 알게 된 남편의 반응이 곱지는 않다. 그러나 자기 힘을 빌리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임을 당당히 밝히는 것은 내 용기였다.
비유하자면 명품가방이지만 삶의 여러 장면에서 내 한계를 남편이 정해서 그 속에서 챗바퀴를 돌리며 살았던 게 결혼생활 초반의 내 모습이었다. 돌이켜 보면 비교적 빨리 깨닫고 남편의 정신과 분리되어서 살아내긴 했지만 내게 지나온 결혼생활은 거의 전투 같았다. 아니 지금도 전투하는 자세로 생활하고 있다.
어제는 남편의 이 패배감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남의눈을 의식하고, 움츠려 들고, 비판하고, 나서지는 않으면서 뒤에서 헐뜯는 모습을 보면서 시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전투해 봐야 이 게임은 지는 거였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슬펐고 화가 났다.
이 슬픔을 받아들이면 나 역시 패배감에 전염될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이어진 닮기에는 정서적인 태도도 예외가 없다는 게 안타까운 결과이기는 하나
또 다른 희망은 내 아이들은 남편이나 그들의 조상에 비해서는 그래도 유연한 편이다.
나 역시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금'을 용납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의 화를 누그러트리는 방법은 그들의 유산이 세습된 것을 찾아내기보다는 '다름'을 찾아내 보는 것으로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