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 타협하기
나에게 못 댄 말과 행동을 하던 사람들이 다 잘못되기를 밤낮으로 빌고 빌었던 시절이 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의 못 댄 말과 행동을 그 자리에서 즉시 ‘이건 좀 아니지!’라고 눈치채기보다는 모임 후에 집에 들어오는 길, 하루 일과가 다 끝나고 잠자리에 누우려는 찰나에 떠오르는 장면에서 이불킥을 하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왜 쓸데없이 온갖 말을 다 했지?’
‘괜히 말이 퍼져 나가는 건 아닐까’ 등등을 고민하며 나에게 함부로 한 사람들을 떠올려 그들과 싸웠다.
그 다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다음에 똑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대로 되갚아주기 위한 연습이었다.
그렇게 옥신각신거리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이다 발언도 떠올리고 내가 이기는 장면이 당연하게 이어져야 맘 편히 꿈나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옥신각신 대는 대화가 매끄러워지지 않고 내가 응징할만한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영상도 보고, 글귀도 찾아보고, 게시판도 살펴본다.
누군가의 속 시원한 경험담을 찾으면 마치 보석을 찾은 기분이다.
"그래! 나도 그렇게 해야겠어."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왜 이 시간에 굳이 이러고 있는 거지? 남들도 이런 식일까?'
그 ‘남’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주변인을 하나 둘 대입해 본다. 어느 누구도 나처럼 이렇게 분개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심각한 것 같다.
'아. 나 좀 문제 있는 것 같아. 나 편집증인가? 승부욕은 또 다른 열등감인데... 난 내가 너무 쭈글 하다고 느끼나 봐.'
그리고는 다시 생각한다.
왜 결국에는 나를 탓하는 거지?
(나는 이겨먹고 싶은 마음이 강한데, 마음 한구석에선 이기려 드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벌주나 보다.)
내 마음에서는 늘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아이가 있는 것 같다.
이왕이면 보기 좋게 이기고 싶다.
이왕이면 유쾌하게 이기고 싶다.
이왕이면 본보기를 보이고 싶다.
이왕이면 내 뜻대로 다하고 싶다.
이겨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주를 갖고 태어난 걸까?
이기는 환상에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고양이가 평소엔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독사 앞에서도 강한 펀치로 제압하는 그 장면을 동경한다. 약한 척, 모르는 척, 순진한 척하다가 결정적인 한방에 제압하는 장면은 늘 통쾌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남들에게는 없고 나에게만 있는 그런 능력이 있기를 바라며 늘 이기고 싶어 한다.
이기려는 마음의 한편에는 정의의 수호천사이고 싶은 환상도 있다.
아무에게다 힘을 쓰고 제압하려는 깡패의 기질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아무에게나 힘을 쓰고 제압하려 드는 깡패를 잡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마음은 같은 선상에 있는 욕구들이다.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의미가 다를 뿐, 누군가를 제압하고 싶은 마음은 동일하다.
나의 이 마음을 오랫동안 살펴봤다.
과연 언제 내게 씨앗이 뿌려진 것이고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찾은 이유들을 살펴보면
1. 오냐오냐 키워진 배경에서 내가 최고라는 의식이 가지치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불쌍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다 허용하는 할머니의 양육방식은 실제로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게 될 정도로 과했다.
2. 한때 마을의 유지였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의 태도가 아빠를 통해 내게도 세습된 것이 아닌가 싶다. 존경을 받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 하고,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하고, 권력이 있어야 하는 봉건사상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도 그대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아빠는 늘 말했다. ‘가시나라고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마라. 특히 머슴아들은 고추를 차서라도 이기고 들어와라!’고.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이 센 아빠는 나도 그렇게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한 말일 텐데, 이 말도 내게 씨앗이 됐구나.
3. 조실부모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여된 책임감도 한몫하는 것 같다. 맏이니까, 누나니까, 언니니까 잘 책임지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부담되면서도 마치 내게 어떤 힘이 부여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배다른 동생들이지만 잘 챙겨야 했고, 그 아이들을 책임진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생활과 행동에 간섭했던 것도 '내가 다 옳다.'라는 생각으로 분위기를 평정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4. 걸핏하면 나를 물고 늘어지는 고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강해야 했다. 반박할 수 있어야 하고 덤빌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처음부터 반박하거나 덤빈 것은 아니다. 가스라이팅이 요즘에 나온 말이라면 아주 어려서부터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 같을 때’ 그럴 때 쓸 수 있어야 되는 게 따지고, 사과받아내고, 이기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 그 마음이었다. 그래서 붙게 된 별명이 쌈닭, 시비털이, 예민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것들이었다.
5. 실제로 중학생 때 일진들과 어울리면서 괜히 힘없는 아이들 앞에서 눈과 말투에 힘을 주면 주눅 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은근한 희열을 느꼈던 경험도 영향이 있다. 어떻게 그 놀이에서 빠져나왔는지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딱 하나 확실한 것은 절친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놀이가 재미 없어졌다. 그 절친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니 나도 그 절친을 닮고 싶은 마음에 착하게 말하고 바르게 생각하면서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6. 아주 조금 똘똘하다. 아니 잔머리가 좋다. 게임을 하든, 불리한 상황이 생기든, 곤란한 문제가 생기든 간에 독박은 면하는 잔재주가 있다. 아마 이런 경험이 스스로에 대한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게 했고, 그것이 남을 제압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습관이 되기도 한 것 같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찾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들이다.
(시간이 가면서 더 찾아지면 업데이트해야겠다.)
왜 그토록 이기는 걸 좋아하고 이겨야지 직성이 풀리고, 이길 수 없으면 도전조차 하지 않는지에 대해 나만의 이유를 찾아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귀엽기까지 한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땐 나도 흔들리는지라 얄밉기도 하다.
이제 나는 늘 이겨 먹고 싶어 하는 에고를 조금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얘야, 네가 그렇게 이겨 먹어야지 직성이 풀린다면, 나는 너를 잘 달래서 꼭 이겨야 될 때만 고삐를 풀어주도록 훈련시키기로 했단다. 널 없애진 않을 거야. 대신 널 적당할 때 마음껏 이겨먹도록 쓸 테니까...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렴. 괜히 별일 아닌 상황에서도 이겨먹겠다고 나타난다면 그땐 내가 너에게 엄청 화낼 거야. 하지만 잘 기다려 준다면 나는 너의 이겨먹으려는 근성을 나의 가장 최대 장점으로 자랑할게. 우리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 보는 거 어때?’
씩씩대던 에고가 잠잠해진다.
다정하게 타이르는 소리를 들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는 자기를 자랑삼는다는 말에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아! 이겨먹으려는 이 승부욕은 인정 받고 싶어 껄떡대는 마음과도 친구였구나!
"그래. 우리 손잡고 사이좋게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