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나는 누구일까_이장일까? 아기일까? O씨일까?

by 석은별

며칠째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빗물이 모여들어 하수구마다 더 이상 물을 빨아들이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스팔트는 부서져 둥둥 떠다니고, 부유물이 가득한 길을 다닐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집안에 갇혀 밖만 내다볼 뿐이다. 그나마 집안에서 내다보는 사람들은 고층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와 도움을 요청하지만 다들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 비에 쉽게 환영하지 못한다. 마치 재난 상황과도 같다.


저 멀리 언덕 위에 학교가 있는 마을이 있다.

그 학교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다. 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마을 이장이 사람들을 학교로 모이도록 한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몇몇 사람들은 집안에 있다가 산사태가 난다거나 물이 차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이장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있지 않는 것에 근심하며 명단에 없는 사람들을 찾아 나설 준비를 한다.

몸에 밧줄을 꽁꽁 동여매고서 학교를 나선다. 몇몇이 동행한다.

저 멀리서 개가 짖는다. 지붕 끝에 올라선 개가 이장 일행을 보면서 꼬리치며 짓는다. 개가 있는 곳으로 가니 옆에는 커다란 고무대야에 아기가 있다. 누군가 아기를 넣어 놓은 게 분명하다. 물이 차서 아기가 담길 지경이다. 이 정도 물이라면 아기를 넣은 지 얼마 안 됐지 싶어 주변을 둘러본다. 일행은 고무 대야에 담긴 아기를 살펴본다. 다행히 숨이 붙어 있다. 물을 빼 내고 대야에 아기와 개를 담아 비닐을 씌워 다시 이동한다.


인기척인가 싶어 둘러보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부대끼는 부유물들이다. 시신도 보인다. 시신은 건져서 근처 커다란 나무에 매달아 둔다. 나중에 이 물이 다 빠지고 나면 화장이라도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에 시신을 수습한다. 불어 터져서 도저히 알 수 없는 얼굴이다. 옷감을 보니 어느 집 어르신인지 대충 짐작할 뿐이다.


한차례 수색이 끝나고 학교로 되돌아간다. 커다란 고무 대야를 배 삼아서 밀며 몸에 달린 밧줄을 잡고 이동한다. 이 밧줄이라도 없었으면 물살에 다 휩쓸려 내려갔을 테지...


이장은 학교에 남은 사람들에게 아기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누군가 말한다.

'얼마 전에 친정 다니러 왔다던 OO네 손자구먼!'

사람들이 둘러보며 아기를 살핀다. 옷을 벗기고 마른 천으로 닦아내 어른 옷을 둘둘 말아 여며 준다.


이장은 생각한다. 아기를 담은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살아있는 건 아닐까.


날이 밝는 대로 생존자를 찾기 위해 다시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비가 더 거세진다며 주민들은 말린다. 하지만 이장은 밧줄을 조금 더 튼튼하게 매고 나서면 괜찮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제 전기도 다 끊긴 마당에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얼마 전에는 감전 사고로 수십 명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이제는 전기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물살이다. 세상이 멸망하는 건가 싶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고 있는지 고민할 틈이 없다. 산 사람 하나라도 더 찾아내야 되겠다는 생각뿐이다.


학교를 나서려는데 저 멀리서 몇몇의 사람들이 보인다. 헛것인가 싶어 다시 살펴보니 분명 예닐곱은 되어 보이는 사람 무리다. 소리를 질러본다. 반응한다. 얼마 만에 산 사람인가.


마을 입구에서 고깃집을 하던 가족들이다. 천을 자르고 꼬아서 밧줄을 만들어 서로 꽁꽁 묶여 있다. 학교를 향해 오는 길에 집집마다 들러봤더니 죄다 죽은 사람들뿐이라고 한다. 그중에 한 명은 마을에서 정신이 온전치 않다고 하는 O씨다. 마을에서 수재로 자라면서 OO대 법대까지 갔는데 2학년 때 데모를 하다가 끌려가서 고문 받고 나오더니 바보가 됐다. 자식이 정신 줄 놓자 그 집 부모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라도 낫게 하려고 굿까지 했다. 가산을 탕진하면서도 자식을 되돌려 놓으려던 노인네들은 하나 둘 지병을 얻어 죽자 마을에서 O씨 집을 돌봤다. 일 손 필요하면 데려가 일 시키고 먹거리를 준다거나 기름을 넣어준다거나 했다. 그렇게 O씨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혼자 살던 사람이다. 고깃집 주인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천을 엮어서 몸을 서로 묶고 학교로 가자고 한 것이 O씨라고 한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 치고는 사리 분별이 분명해서 감전사도 피할 수 있었고, 어느 집에 가면 뭐가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어 며칠 동안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쩐지 이장은 그제야 한시름 놓인다.

그렇게 찜찜하던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이들을 만나서 학교로 돌아오고 나니 더 이상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장은 그제야 자기가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이제 비도 곧 그치겠는걸...'


다음날 몇 주 만에 드디어 비가 그친다. 비 오는 동안 한 번도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새벽부터 들린다.

사람들이 밖을 내다보니 흙탕물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비가 그쳤을 뿐인데 어쩐지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던 이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홀린 듯 사람 구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으이구....'


그 말을 듣고 O씨가 와서 그를 수습한다.

그리고 얼마 후 마을에서 회의가 있었다. O씨가 앞으로 마을 이장이 되기로 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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