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내력인 줄 알았던 술

갑자기 떠난 나

by 석은별

지난날을 떠올리면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꽤 많다. 요즘이야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면 안 되지만 내 나이 마흔 중반이니 우리 세대는 어려서 가족들 심부름으로 술과 담배를 자주 사다 날랐어야 했다. 소주나 맥주는 모두 병이었고 당시 콜라도 커다란 병콜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병을 팔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물건으로 가져올 수 있어서 술심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기도 했다. 아빠가 얼큰하게 술이 취하면 심부름하고 남은 돈도 내 차지가 되니 맏이인 내가 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술과 담배를 수없이 사다 나르던 나는 당연히 사람들 마다 술의 취향과 피우는 담배의 종류에 대해서 꿰고 있었다. 그럼 알아서 소주와 맥주를 사 오라고 하면 어떤 소주와 어떤 맥주를 사야 되는지를 잘 맞추는 편이었다. 빈병을 갖다주고 군것질 거리로 바꿔서 오다가 하루는 아저씨를 졸라서 돈으로 달라고 했다. 과자나 하드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고 그 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을 많이 가져가는 날에는 반은 과자로 반은 돈으로 받아서 챙기기를 여러 번... 제법 돈이 모였다.


그 돈으로 했던 일은 주로 오락실 가서 놀거나, 학용품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 수첩을 사면 꼭 언제 얼마가 생겼다고 적으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내 나름 용돈기록장의 시작인 것 같다. 그렇게 일기 다음으로 기록이 된 것은 돈의 흐름에 대한 기록이다.


술 심부름으로 생긴 돈이 꽤 쌓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가족들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고 그 술에 대한 허용적이고 친밀한 마음은 성인이 된 나에게도 술이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를 돈독하게 만드는 매개로 기억하게 했다. 물론 술 때문에 일어난 몇몇의 큰 사건들도 있지만, 탁주집을 했던 외가와 술을 좋아하는 친가 가족들을 보면 술에 대한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긴 하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먹어 본 나이는 17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언니들과 함께 종이팩에 든 소주를 사서 빨대 꽂아 놀이터에서 먹었던 게 처음이다. 새우깡을 두고 먹어 본 소주는 어쩐지 그전에도 자주 먹어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술을 자주 마시는 통에 그 냄새가 익숙해서인지 직접 몸에 들어갔는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으. 맛없어!'라고 다시는 입대지 않던 언니의 소주팩을 내가 다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보다 더 자주 마셔 본 언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혀가 꼬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나. 술이 안 취해!'


그랬다. 그렇게 몰래 마셨던 술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내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게 술에 대해서는 관대한 일들이 많았다. 남학생이 태반인 과 친구들과 쉽게 어울린 것도 술 덕분이었고, 삐쳐서 며칠간 말 안 하던 친구와 푼 것도 술자리였다. 그리고 고백을 받았던 것도 술자리고, 아프게 이별을 통보했던 것도, 이별을 통보받았던 것도 다 술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인정했다.

'술을 좋아하는 것도, 술이 잘 받는 것도 다 집안 내력인가 봐...'


한창 술을 좋아하던 20대 초반을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자연스럽게 술과는 멀어졌다. 그다지 술이 당기지도 않고, 술을 마실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키친드렁크가 된 30일의 경험이 있다.

(정확히 30일이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남편이 갓 태어난 아기 강아지를 입양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술은 내게 중독까지는 아닌 '관계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면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가 죽고 난 후에 술은 '잠들기 위함'이었다. 매일 저녁마다 마신 맥주 3천 리터(갈색 병)는 술에 취하지 않는 나를 취하게 만들었고, 술 없이는 못 자게 만들었다. 어떤 날에는 맥주로는 안되니까 소주를 섞어서 마셔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네 살짜리 꼬맹이가 있으니 낮에는 맨 정신이어야 했다. 최소한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시간까지는 맑은 정신으로 아이를 만나야 했다. 아이와 함께 집에 들어오는 길에 아이를 위한 간식을 산다는 핑계로 늘 내가 마실 술을 샀고, 아이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라고 했다.


강아지 죽은 게 뭐라고 그렇게나 술에 빠져야 했나 싶지만 그 당시 나는 인생을 통틀어 모든 화와 슬픈 마음이 폭발하듯 일어나는 시기였다. 평소 밝고 명랑하다는 평을 자주 듣던 내가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이후 내 삶이 뒤틀리듯 괴로웠다. 한 번도 버려진 마음에 대해서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때의 나는 버려진 마음과 슬픈 마음과 아픔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어찌 살라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에는 강아지가 죽어서 슬픈 것이 강아지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는 혼자 남은 나의 슬픔이었고, 만삭일 때 친정 엄마의 장례를 치르면서 미처 애도하지 못했던 슬픔이 그제야 터져 나와 폭발했다는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며 질식할 것 같은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어하던 내가 어느 날 아침 눈뜨자마자 슬피 울었다. 아니 꿈에서부터 울었는데 눈 떠서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서러웠던 것 같다.


그 꿈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열 살 전후의 내가 어른들의 술 심부름을 하면서 빈 병으로 과자를 바꿔 먹고 돈을 모으던 장면이었다. 그때의 나는 주변이 늘 시끌벅적했다.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고, 같은 모양의 집들이 지어진 골목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는 그 시절이 좋았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배경이 다 흑백으로 바뀌어서 주변이 재로 사라지더니 그 여자아이만 컬러다. 그 아이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심장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 아이를 알아봐야 될 것 같았다.


'너 외롭구나! 너 무서운 거지? 다들 사라지니까 무서운 거지?'


나는 화면 밖에서 바라보다가 그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멍하게 서 있는 그 아이가 꼬질꼬질 변한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지만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 몸만 베베 꼰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없다. 없어서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못한다.


그 아이에게 내가 다가갔다.

나 역시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떼서 다가가니 그 아이가 가만히 기다린다.


'너 외로웠구나. 너 많이 무서웠구나... 다 사라졌어. 그래. 여기 있던 집들도 사람들도 다 사라졌어. 그런데 말이야 널 버린 게 아니야. 너를 데려갔는데. 그래서 그 아이도 지금 어딘가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데... 미처 지금의 너를 데려오지 못했나 봐. 실은 아직도 몰라. 네가 여기 있는지... 그러니까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사람들 많은 곳으로 내가 데려다줄게. 거기엔 다시 네가 움직이고 뛰어놀 수 있을 거야.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해. 미안해.'


그렇게 말로는 '미안해 미안해'했지만 오롯이 그 아이의 입장이 되어 설움과 안도를 느끼며 눈을 떴다. 도저히 멈추지 않는 눈물도 함께...


그리고 그날 이후로 술은 찾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술을 억지로 피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술을 마셔야 되는 자리가 생기면 여전히 술에 취하지 않고 주량을 모르는 만큼 마시기도 한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그런 날이 있다. 하지만 그 30일간의 키친드렁크의 생활에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속 깊은데 있던 외로움과 버려짐으로 슬퍼했던 나를 마주했던 그 꿈 덕분이었다. 그 꿈 이후에 나는 마음공부가 왜 중요한지, 그것이 왜 삶을 바꾸는지를 현실에서 경험했다.


꿈에서 마주한 아이를 현실에서도 살펴서 떠올렸다. "나는 많이 외롭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랑 사는 어른 아이구나."를 깨닫자 단주가 시작됐다. 알코올이 그립지 않고 단번에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그 아이. 그 아이를 고통으로만 알고 마주할 용기가 전혀 없었던 내가 '엄마'라는 힘이 꿈에서라도 그 아이를 보게 만들었다.


'너 외롭구나'라는 이 한마디가 스스로를 변하게 만들었다. 고통을 마주한 이후 저절로 변한 것이다.


이 경험은 삶에서 다른 형태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때문에 나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늘 한결같이 말한다. '자신을 만나세요. 그리고 보낼 아이는 보내세요. 필요하다면 도와 드릴게요.'라고... 갑자기 떠난 나는 언젠가 사라졌어야 될 나였다. 여전히 떠나지 못한 내가 행동에서 감정에서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래 또 어떤 시절의 나를 두고 왔나 살펴보자.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