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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May 08. 2017

인천공항에서 일주일을 살아보기

공항에서 일주일     

글·사진 조은식 대학생 기자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공항을 소유한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공항에 초대되어 지내면서 책을 쓰게 되었다. 2015년 추운 날, 집 밖에 나가기 싫은 은식 드 최고는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몇주 전 갑자기 ‘나도 알랭 드 보 통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책 자체는 재미없지만 공항에서 산다는 아이디어 하나는 끝내준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겼다. 일주일 간의 도전이 끝나고, 몇박 며칠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종 공항에 와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일주일 동안 보냈던 소중한 시간을 메모한 순서대로 나열해보겠다.     

착각_인천에 살고 있지만 인천공항까지는 열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갈아타야 할 역에서 실수로 반대편 열차를 탔다. 그렇게 3~4개 역을 지나쳤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나의 부주의 탓도 있었지만 여행용 캐리어를 가진 여행객들이 많은 탓도 있었다. 이 역시 나의 편견이고 착각이었다. 비행기를 타러 떠나는 사람들만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여행 온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여행자들은 어디로 가든지 어느 방향으로든지 있다. 그러한 착각으로 인해 도착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도착_뉴욕에 위치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했다. 그 건물에 들어설 때면 입구가 너무 작아서 고개를 숙여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그러다 중심부에 들어서면 공간이 아주 넓게 부풀려져서 가슴이 탁 트인 기분이 들게끔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좁디좁은 열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터널 같은 공간을 지나 공항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오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린다. 가게, 천장, 바닥, 시계,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그외에는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되는 공간도 보인다. 무료로 탈 수 있다. 일주일이나 시간이 있다. 무작정 걸어보기로 한다.     



기계_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쓰여 있다. 1만년 전, 중동의 일부 지역에만 있던 잡초 중 하나인 밀. 지금은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좀더 생각해보면 인간은 신석기 혁명, 곡식의 재배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지만 사실은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고 말한다.

알파고의 지능에 전세계가 놀란 한편 다른 한쪽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의 지배와 반란을 다룬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커다랗고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공항에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곳곳에 있다. 사람들은 그 주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것의 길들이기는 이미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변기_일단 화장실부터 들른다. 외국인들이 보인다. 호주에 여행 갔을 때였다. 시드니 공항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한 중국인이 물을 잠그지 않고 나가는 것이었다. 곧바로 가서 물을 껐다. 다른 중국인이 와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또다시 물을 잠갔다. 속으로 흉을 봤다. 내가 물을 쓸 차례였다. 아무리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수도꼭지의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오고 얼마 지나서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이었다. 스스로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히고 무지했는지 깨닫자 귀가 빨개졌다. 아무튼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자면 모든 화장실 대변기에 앉아 문을 닫으면 다음과 같은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볼일을 보자. 그건 금지되지 않은 것 같다.     

종교실_화장실을 나와 벽면을 따라 걷다보니 ‘관계자 외 출입금지구역’과 맞붙어 있는 종교실을 찾을 수 있었다.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보인다. 신은 어디에도 계신다는 말처럼 공항에도 정말 종교실이 있다.     

화원_조금만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야외에 큰 규모의 화원이 마련되어 있다. 꽃이 활짝 필 즈음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봉피양’이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곳의 평양냉면 맛은 정말 끝내준다. 공항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냈다. 병원에서 먹는 밥과 달리 공항에서 먹는 밥은 정말 최고다.     


편의점_일반 편의점과 공항 편의점은 무엇이 다를까, 직접 살펴보았다. 여행용 어댑터와 조잡한 기념품이 보인다. 라면을 살 순 있지만 먹지는 못하며 맥주를 살 순 있지만 편의점 안에서는 마시지 못한다. 대학 기숙사에 맥주를 팔지 않아 공항도 그럴 줄 알았지만 4개에 만원 할인을 여기서도 한다.     

영화관_공항에도 영화관이 있다. 여기서 <미녀와 야수>와 <콩: 스컬 아일랜드>를 연이어 봤다. 시간이 늦어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상영마다 D열 뒤로 사람이 가득 찼다.     

손님_공항에서 일주일을 산다고 주변에 알렸다. SNS로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이 해도 되냐는 말에 깜짝 놀랐다. 심지어 제주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중요한 건 예상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 처음 4일은 나 혼자 보내고 남은 3일을 같이 보냈다. 혼자와 둘의 삶은 달랐다. 같이 영화 <터미널>을 보았다. 미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한 빅터가 공항 터미널에 살면서 겪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공항에서 함께 지낸 사람들은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다. 난 항상 누나를 갖고 싶었고 누나는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동생을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냥 가족이 되기로 했다. 마지막 날 배웅을 했는데 김포공항은 인천공항과 달리 24시간 개방이 아니라 노숙이 불가능했다.     

공항의 밤_그 옛날의 대영제국처럼 인천국제공항의 해는 지지 않는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열려 있다. 일주일 동안 노숙을 하면서 보안요원에게 쫓겨나진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벤치에 경유하는 여행객들이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름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서 주로 그곳에서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도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노래방에서 생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처럼 내 존재가 낯설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새벽, 아침, 오후, 늦은 저녁의 공항은 다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자정부터 오전 2시까지만 한산한 편이고 오전 3시부터는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그 여유로운 2시간은 산책하기 좋다. 새벽에 남산타워에 올랐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에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때의 서울 야경처럼 공간은 평소보다 더 커보였다. 천장은 더 높고 벽은 더 넓게 느껴진다.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찜질방_하루는 인천공항에 있는 찜질방에 가서 잤다. 새벽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1만5천원, 그 시간이 지나면 2만원이다. 비싸다. 5천원을 아껴보겠다고 새벽 6시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딱 6시5분에 목욕탕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행복 목욕탕이 따로 없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이곳의 찜질방에서는 식혜와 달걀을 팔지 않는다. 한국의 끝내주는 찜질방 문화를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출발하는 층_공항에서 일주일 동안 살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니다. 구석구석 다닐 곳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다. 지금껏 해외에 나갈 땐 항상 보안검색대로 직행했다. 그런데 조금만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예쁘게 꾸며놓은 곳도 많았고, 전시 등도 볼 수 있다.     

명당_일주일간 내 아지트가 되어준 고마운 곳이다. 바로 도착층 2층에 위치한 인터넷 카페. 밤이 되고 담당자가 퇴근하면 이 공간은 텅텅 빈다. 사람들은 보통 1층에서 많이들 잔다. 이곳은 잘 모른다. 그래서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잘 수 있다. 콘센트 전원을 내리고 가시는지 인터넷 카페의 콘센트에 노트북 충전기를 꽂아봐도 아무 반응이 없다. 모든 콘센트에 꽂아봤는데 딱 한 군데에 전류가 흘렀다. 그곳을 명당이라 부르기로 했다.     

마지막 날_경유지였던 공항이 여행의 목적지가 되자, 하루하루 낯선 나날들이 이어졌다. 여행자로서 한국에도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외국에도 있지 않았다. 며칠을 공항 터미널에서 애매모호한 삶을 살았다. 원래는 제주로 떠나려고 했지만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지 않고 (못하고) 인천에 남았다. 공항에서나 바깥세상에서나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계획이 바뀌고, 지연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먹고, 자고, 싸고, 상상하고, 관찰하고, 다를게 없다. 공항에서 일주일을 살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살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사는 세계를 커다란 공항이라 생각하고 살아도 달라질 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바다도 뭍도 아닌 애매모호한 곳에 서 있다. 온 세상을 커다란 공항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공항의 한구석에서 지낸다는 마음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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