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꽃사진은 못 참지

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11)

by 안이다

올봄엔 무슨 이유인지 SNS 꽃사진 포스팅이 유난히 더 많았던 것 같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서 움츠려 지내야했던 것에 일종의 보복심리가 작용해 너도나도 화려함과 활기의 상징인 봄꽃사진을 더 올려댄 건가, 아니면 어느덧 나를 비롯한 내 주변사람도 중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아져서 그런건가 싶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SNS에 꽃사진이 많아지면 중년이라고.


메마르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햇볕과 바람에 온기가 실리며 산에 들에 길가에 화단에 화분에, 혹은 우리 마음에 꽃들이 얼굴을 내미는 봄날이 도래하자 SNS 지인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봄꽃 사진을 줄줄이 포스팅했다. 매일매일, 너도나도 올려서 너무 흔하고 뻔해 보이는 게 겸연쩍었는지 어느날부턴가는 이런 우스갯소리를 곁들이며 꽃사진을 올렸다.


[중년은, 꽃사진은 못 참지.]

[너무 참으면 병 난다지? 나도 꽃사진 투척.]

[봄꽃 식물도감에 도전!]


지난 주말에 군포 철쭉동산으로 출사를 갔다. 애초 출사지는 충남 서산의 개심사와 무심사 왕벚꽃길이었는데, 그곳에 다녀온 이가 전하길 인파가 너무 많아서 새벽에 도착해도 주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봄꽃 나들이를 다니길래 이른 새벽부터 주차전쟁을 치르는지, 집순이인 나로서는 놀랍고 어리둥절한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변경된 출사지는, 역시나 봄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군포의 철쭉동산으로 정해졌다.


출삿날 아침, 지하철 수리산역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었을까. 아파트 단지에서 공원으로 연결된 언덕배기를 올라섰다가 눈앞에 느닷없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는데, 그때 느낀 기분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단순히 화들짝 놀랐다고 하면 부족하겠고, 압도당했다고 하면 지나친 것 같은데, 아무튼 놀람과 압도당함, 그 중간 어딘가가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본 건 하나의 커다란 동산이 온통 붉은 물결의 철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로지 철쭉천지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동산에도 각양각색의 풀과 나무와 꽃들이 살았을텐데, 그들은 어딘가로 쫓겨났거나 솎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당황스럽고 서글픈 마음이 피어올랐다. 아마도 전국의 여타 단일종 꽃천지도 그런 식으로 단장됐을 거였을텐데 말이다. 나중에 철쭉동산 관련정보를 찾아보니까, 99년부터 매년 군포시에서 수리산 자락 2만 5000㎡에 산철쭉을 중심으로 자산홍·영산홍 등 22만 본의 철쭉류를 심고 관리하여 현재는 수도권에서 가장 큰 철쭉 군락지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날은 철쭉들이 제대로 활짝 핀 시기여서 참으로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이삼십대의 젊은 층도 간간히 보였지만, 역시나 가장 많은 연령층은 4, 50대 중년이었고, 가족과 나들이를 나온 그룹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 눈에 가장 많이 띈 이들은 친구들과 철쭉 꽃무더기 안에서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는 여성 중년들이었다. 그 광경은 마치 그동안 내가 SNS에서 봤던 수많은 중년의 꽃사진을 현실로 옮겨 놓으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철쭉동산은 한마디로 중년의, 중년에 의한, 중년을 위한 꽃동산 놀이터라고 요약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이런 단일종의 꽃천지가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 그러니까 계절마다 더 화사하고 예쁜 꽃 군락지를 찾아다니는 중년들의 발걸음에서 비롯된 일들이 아닌가 싶었다.


철쭉동산을 카메라를 담는 동안, 중년들은 왜 이렇게 꽃에 열광하는 걸까? 아니 정확하게는 꽃 사진 찍기에 진심인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꽃사진이 좋으면 중년 중에 많은 이들이 자기 프로필 사진에다 자신의 모습 대신 꽃 사진을 올려둘 정도니까. 물론 꽃이 딱히 좋아서라기 보다는, 이제 나이 들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젊고 예쁜 모습이 아니어서 자기 얼굴 올리기엔 난감하여 예쁜 꽃이나 풍경을 올리는 거라는 말도 있는데, 어쨌든 수많은 중년들이 자신의 중요한 사회적 얼굴 자리에다 꽃을 놓아두는 상황이다.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SNS 지인들 사이에서 올봄 초에 유행했던 “중년은, 꽃사진은 못 참지.”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도대체 왜 중년은 꽃사진에 이토록 진심이고 열정적인 건지, 그 이유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 이에 관해 납득할 만한 추측이나 해설을 만나진 못했는데, 글쎄 내 경험을 비춰보면 이런 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계절보다 유난히 봄날은 짧은 것 같고, 돌이켜보면 우리가 젊고 예뻤던 인생의 찬란한 봄날도 그러했던 것 같았다. 젊은 시절엔 멋 모르고 좋은 날이 얼마나 좋은 줄 모르고 흘려보냈던 때가 너무나 많았으므로, 어느덧 나이가 들어서 삶의 지혜랄까, 세상 흘러가는 방식을 아는 눈이랄까, 그런 게 우리 안에 조금 더 깊어진 데가 있다면, 좋은 걸 붙들 줄 알고 즐길 줄도 알게 된 건 아닐까 싶다. 그게 기억으로든, 사진으로든, SNS로든, 좋은 날에 대한 기록하고 박제해두고 싶은 마음을 굳이 참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싶다. 여행 다녀오면 남는 게 사진이고 살다보면 남는 게 기억인데, 나중에 더 나이 들어 꺼내볼 행복한 시간을 부지런히 차곡차곡 쌓아두는 게 중년들이 해야 하는 가장 가치있는 투자이자 현명한 노후준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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