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10)
오늘도 모자를 쓰고 에코백을 둘러매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전방에 타코를 굽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의 트럭 주변에는 아무도 없지만, 아저씨는 타코를 굽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밀려온다. 다들 도대체 무얼 해서 먹고 사는가. 그런 의문에 답이 될 만한 사람들이 거리에 지천으로 넘친다.
타코틀에다 기름칠을 하고, 반죽을 붓고, 소를 올리고, 다시 반죽을 붓고, 반대편으로 틀을 뒤집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다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져서 아저씨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아저씨가 일하는 모습을 잘 담을 수 있게, 아저씨 앞으로 가서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에 아저씨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찍지 마세요! 왜 남의 얼굴을 함부로... 첫 몇 음절은 짜증스러운 반응으로 버럭 소리가 높았다가 이내 어투가 부드러워졌다. 아저씨는 소리치다가 깨달았을 것이다. 손님에게 그러면 안 된다, 장사 안 된다는. 밥벌이의 무거움이란 게 그런 데 있을 것이다. 따져도 되는 것, 소리쳐도 되는 것에 소리를 낮추고 대충 웃으며 흘려 넘어가야 한다는 것. 아저씨께 미안했다. 아저씨가 차라리 내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 고스란히 내뱉았더라면 무안은 했겠지만, 덜 미안했을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 산책하는 내내 아저씨의 모습이 마음에 남아서 떠올랐고, 지금 이 시간 산책일기를 쓰는 동안에도 생각이 난다. 혹시 내가 먹고 사는 모습도 누군가에게 구경거리가 된다면, 신기한 뭔가가 된다면 어떨까. 나는 동네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구경거리로 삼아 사진을 찍는다면 아마 불쾌함을 고스란히 그대로 드러냈을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의 무거움에 대해 다시 한번 가슴에 담아두게 된다.
시장을 지나서 동네골목이 시작이 되는 지점에서 방앗간을 보았다. 옛날에 고추를 빻는 방아라는 기계를 오랜만에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가게에 다가가 가게에 딸린 방에서 쉬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가게 안을 찍어도 될까요. 이번에는 먼저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아주머니는 왜요, 무슨 일이어요. 경계심이 다소 곁들어 있는 의아함 표정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이런 기계 요즘 잘 못 보는데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래요, 라고 대답했더니 그제야 아주머니는 동의의 의미로 담백하게 웃어보였다.
사진을 몇 장을 찍고서 그런데 저 기계 멈춰있네요. 요즘 안 쓰시나요, 라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요즘 고추 같은 건 다 빻아서 나오니까요. 가을 즈음에나 고추를 빻는데 그때 한 20킬로그램을 하면 일년 내내 먹으니까요, 요즘엔 고추 빻을 일이 없으니 기계가 놀죠. 더군다나 여긴 서울이니까 밭도 없고 하니 고추 빻을 일이 별로 없죠. 내가 다시 물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럼 뭘로 요즘 장사하세요? 아주머니는 기름 짜서 팔지요. 모두들 불경기니까 그렇죠. 사는 게...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엷은 미소를 보였다. 그렇다고 불경기라고 대답해봤자 너무 뻔한 반응인 것 같아서 다음에 여기 올 때는 참기름 한 병 사갈게요. 아주머니, 고마워요, 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주머니는 밝게 손을 흔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얼마나 먹고 사는 게 힘든지 오늘 길에서 여러 번 우연찮게 겪은 장면들이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