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모르는 이야기
대학 졸업 직후, 독일 유학비를 벌자고 잠시 동요 출장 강사를 했을때의 일이다. 한 학생의 첫 테스트 수업 날이었다. 그날 처음 만난 3학년 아이는 똘망하고 반짝이는 목소리를 가졌었다. 학급 반장처럼 똑똑해 보이는 얇은 금테 안경을 쓰고, 잘 빗어진 양갈래 머리에 고급 원피스 아동복을 입고 있었으며 깨끗하고 잘 꾸며진 아파트에 조율이 잘 된 피아노 있는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님은 부지런하고 돈을 잘 버시는 분일 것이며 아이의 학업과 생활 환경에 관심이 많은 분들일 거라는 짐작이 갔다. 내가 시범을 보이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며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이 초롱초롱 햇살처럼 빛나던 아이였다.입을 크게 벌리고 음절 하나 하나 짚어 가며 진심으로 노래하는 순수한 열정 앞에 나는 종종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름 크고 작은 동요대회를 석권하던 노래 꿈나무였던 내 초등학교 때가 수시로 겹쳐 보이며 제법 재미있는 수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방문이 벌컥 열리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옆에서 봐도 되죠?”
과일 주스를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온 학생의 어머니는 음료를 한 잔씩 건네고 자연스레 알록달록한 이불보가 씌워진 아이의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이미 자리를 잡은 순간 내 대답은 중요치 않았다. 1:1로 진행되는 도제식 학습법에서 교수자와 학습자의 첫만남이란 무릇 지식의 전달보다는 두 사람이 유대하고 교감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수업이니 학부모의 뒷받침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난 옅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ㅇㅇ야, 너는 발음을 완벽하게 해야된다고 생각해서 한 글자 한 글자 떼어서 부르는데,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어줘야, 듣는 사람들이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지? 그것만 고치면 이 노래는 훨씬 좋아질 것 같아!”
나의 지적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아노 반주에 맞춰 다시 노래를 불렀다. 아이의 눈빛을 보니 나의 이야기를 이해한 게 확실해 보였지만, 잘못 자리잡은 습관이란 건 지독하게도 한 번에 고쳐지지 않았다. 아마 처음 노래를 배울 때 ‘입을 크게 벌리라’고 배워서 자신도 모르게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주는 습관을 가지게 된 듯 보였다. 몇 번의 시도에도 잘 되지 않자 아이는 자신도 조금 답답해졌는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 볼게. 잘 안될 땐 안되는 부분만 따로 떼어서 연습을 하는거야.”
나는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 시범을 보였다. 아이가 어려워했던 부분을 불러준 그 순간, 눈이 커진 어머니가 바로 아이의 옆구리를 힘주어 쿡 찌르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저것 봐. 선생님 하시는 거 잘 보라고. 집중해 집중! 저렇게 간단한 것도 못해? 어디서 감히 한숨을 쉬어?”
어머니의 예상치 못했던 일갈에 당황한 내가 돌아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묵은 불만을 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재능이란 건 타고 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얘는 노래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 따라하면서 무슨 노래를 한다고 하겠어요? 티비 보면 재능 있는 애들이 수두룩하게 나와서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데, 그런 애들 사이에서 얘가 무슨 경쟁력이 있냐구요? 잘못된 점을 말해줘도 얘는 머리가 나빠서 한 번에 이해를 못해요.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그순간 난, 아이의 얼굴에서 오랜시간 무수히 학습된 듯한 짙은 그림자를 보았다.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혼난 것이 숙쓰러운지 아이는 슬쩍 머쓱한 미소를 지었지만 웃음을 머금은 입술은 옅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나에게도 처음이었던 터라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학부모들은 행여 우리 애의 기가 죽을까 내게 따로 전화를 하거나 단 둘이 있을 때만 고민을 토로하곤 했는데, 아이의 면전에서 이토록 강한 무시와 다그침을 보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먼저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켜야 했다.
“어머니, 노래라는 것도 운동신경이라서 자꾸 일깨워 주고 훈련을 해야 내 것이 돼요. 그러니까 조금만 차분히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이 어머니는 그제야 잠시 침묵했다. 습관은 계속 연습하면 고칠 수 있다며 살살 달래니, 굳어있던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우리는 즐겁게 두어 곡의 노래를 내리 불렀고, 아이는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처음엔 소리가 나지 않던 저음도 멋지게 냈고, 고치라던 안좋은 입모양 습관도 여러번 시도하니 더 나아졌다. 그러나 한 쪽에서 팔짱을 끼며 매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오래 참았다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선생님 말씀을 머릿속으로 적용하면서 들으란 말야! 넌 어쩜 그렇게 돌머리니?”
나는 참 부족한 선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교사이기 전에 대학을 갓 졸업한 어수룩한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나는 엄마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아이의 자존감과 가능성을 사정없이 깎아내리는 어머니의 폭력적인 언사에 나조차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고 끝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돌머리’, ‘머리는 액세서리’, ‘멍청이’ 와 같은 인신공격성 단어들에 내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다.
‘이 아이 엄마의 나름의 강한 훈육 방침일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엄마의 방식이 틀린 걸 지적하는 게 맞지만, 선생인 난 어디까지 관여해야 되는 거지? 자기 엄마의 방식을 반대한다고 아이가 상처받는 건 아닐까? 아니, 아이가 엄마를 무시하거나 반항하게 되려나? 그보다 혹시나 내 태클에 저 엄마가 기분 나빠서 레슨 안하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돈도 벌어야 하는데.’
교사로서의 이상과 유학자금을 벌어야 하는 일급쟁이의 현실을 오가며 머릿속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아이 어머니는 선생인 나보다 더 많은 발언을 했고 수시로 버럭하며 레슨의 흐름을 끊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창피하다는 듯 큰 눈을 굴리며 나와 땅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최대한 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그녀의 월권을 제지해야 했고 동시에 잔뜩 굳은 아이를 달래가며 노래까지 불러야 했다. 그렇게 승산없이 양쪽의 기싸움을 하다 보니 오십 분의 레슨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아이 어머니는 시계를 보더니 아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 밀치며 ‘니가 한번에 잘 이해를 못하는 바람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고 질책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선생님 없는 동안 연습 시켜볼 테니, 연습 교재로 선생님 노래 시범 보여주시는 얼굴좀 찍을게요.”
당연히 처음 본 학부모의 휴대폰에 내 얼굴이 찍히는 게 내키지 않아 거절할 말을 고르던 내 앞에서, 초면의 아이 엄마는 사정없이 녹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노래 부르세요!”
가뜩이나 아이가 속수무책으로 모독성 발언을 견뎌야 하는 장면에 한시간 가량 노출 된 상황이라 나조차도 폭력을 당한 기분이었음에도, 잔뜩 기가 빠져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이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이거라면 노래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아이 어머니의 휴대폰을 보며 노래를 불렀고 그녀는 흡족해 했다. 다 부르고 나니 왠지 이 엄마의 쉴새없이 몰아치며 다그치는 수법에 나 또한 내몰린 기분이었다. 내가 조금 더 경험이 많은 교사였다면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았을 텐데... 햇병아리 레슨 선생의 시련이었다. 원치 않던 영상을 찍고 나니 이 아이가 노출되어 있었을 모진 훈육의 현장이 철저하게 피부로 와 닿았다.
“너 선생님 잘 만났다! 선생님 착하다고 기어오르지 말고 너 이 영상 하루에 열 번씩 보면서 복습해! 선생님, 우리 꼴통 노래좀 팍팍 늘게 잘 부탁드려요.”
아이 엄마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며 날 보고 배시시 웃었다.
아이는 불과 열 살이었다. 수많은 예술 영재들과 비교해 머리가 나쁘니, 실력이 뒤쳐지니를 논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다. 아이가 즐겁게 노래하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뻐도 될 나이 아닌가. 더 마음이 아픈 건, 단 하나의 장점마저 몰살시킨 엄마의 완벽주의 폭언에, 아이는 너무 무덤덤했다는 거였다. 되려 이런 일은 매우 비일비재하다는 듯 의연한 태도였다. 아이와 단 둘이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나가달라는 부탁에 아이엄마는 순순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ㅇㅇ아, 오늘 선생님하고 입모양 고쳐본 거 잘 안되다가 딱 고쳐졌을 때, 기분이 어땠어?”
표정이 굳어있던 아이는 칭찬받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잘 못해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니까 잘 됐어요.”
“그렇지? 노래는 잘 할 수 있다고 늘 생각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내 머리로 연구해야 몸이 반응해. 그러니까 한번에 잘 안됐다고 해서 영원히 안된다고 결론 내리면 안돼. 우리는 같이 ㅇㅇ이한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거야. 알겠지?”
그러자 아이는 문 너머의 엄마를 의식한 듯 문쪽을 힐끔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좀 시작이 느린 편인데, 엄마는 한번만 못해도 엄청 화내요. 내가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게 아닌데...”
내내 폭언에 무덤덤해 보였던 아이의 마음 속엔 자신도 모르는 생채기가 잔뜩 나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게 아니었다. 자기도 답답하고 해결 방법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었을 뿐... 가슴이 아팠다.
“선생님이 보기에 ㅇㅇ이는 단점보단 장점이 더 많거든? 잘 안되는 건 한 번에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어. 선생님도 어릴때 어린이 합창단을 오래 다녔는데, 그때 노래하던 습관이 잘못 붙어서 고치느라 엄청 오래 걸렸어. 방법을 일찍 이해했다면 좋았을 텐데 잘 모르겠어서 엄청 헤맸어.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엔 ㅇㅇ이는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니까 스스로 잘 고칠 수 있을 거 같아! 아마 ㅇㅇ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조바심이 나셔서 조금 그러신 거 같아. ”
“엄마가 절 사랑해서 그런 건 알아요... 엄마니까요.”
‘엄마’라는 말을 힘주어 말하던 아이의 표정이 다소 쓸쓸해보인 건 내 기분 탓이었던 걸까. 심성 곱고 이해심까지 넓은 아이는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다음 레슨이 기대된다고 했다. 이노래 저노래도 불러보고 싶다며 신나서 동요책을 펼쳐 보였다. 다음에 만나면 그 노래를 꼭 같이 하자고 약속하고, 아이 엄마가 기다리는 거실로 나섰다.나는 용기를 내어 아이 어머니께 이야기했다.
“어머니, 오늘은 첫시간이기도 하고 일단 노래를 쭉 부르면서 ㅇㅇ이의 평소 노래 습관을 지켜봤어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어머니께서 지적하실 때 온몸이 크게 위축되더라구요. 노래는 행복한 기분으로 불러야 해요. 주눅이 들면 근육이 쪼그라들어서 목에 힘을 주고 성대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수 도 있으니 레슨 중에 아이를 너무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아이가 고쳐야할 건 제가 성의껏 가르쳐보겠습니다. 참관하시는 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저랑 ㅇㅇ이가 교감할 수 있도록 조금 답답하더라도 기다려주세요.”
내 이야기에 아이 엄마는 황당하고 기가 차다는 듯 대답했다.
“주눅이요? 쟤가요? 하! 선생님이 몰라서 그러시는데, 얘는 아무리 혼을 내고 빌기까지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애예요. 오죽 답답하면 제가 이러겠어요! 야! 꼴통! 거실로 나와 봐! 너 샘한테 착한 척 하면서 또 잔머리 굴리면서 레슨시간 허투루 썼다간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며 엄마의 말 속에 숨겨진 회초리를 감내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제 배 아파 낳은 엄마만 모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만남에 두 모녀의 사랑의 크기를 가늠한다는 건 너무 섣부른 일이란 걸 알지만 그들의 사랑 방식은 위험해 보였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가 평생 키워야 할 자존감의 텃밭을 해충처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와 두 번의 레슨을 더 한 뒤 나는 그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은 잘 가르치시는 거 같은데, 아이한테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노래는 그만 시키려고요. 헛된 꿈이었나 봅니다. 엄한 데 돈 쓰지 말고 영어 과외나 시켜야될 거 같아요.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