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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목소리

by 이주인

온, 오프라인을 통해 타인의 교류관계를 보면 새삼 의아할 때가 있다.


누구는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두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많은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정말 친하다 느끼는 친구, 교류는 빈번하지만 그 정도는 아닌 친구 등 디테일을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다. 뭔가 친함의 정도나 마음속에 등급이 있는 셈이다.


나도 그런 게 있었다. 인생의 대부분이 사랑보다는 우정이 가까웠기 때문에 어쩌면 디테일을 따졌는지 모르겠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오랜만에 연락하거나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관계를 친구라고 정의하자. 어린 시절엔 내가 뭘 해도 좋아해 주는 반에서 인기 있는, 그래서 친구가 많은 학우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물론, 난 그런 ‘기프트’는 가지지 못했다 생각해 적잖이 조용히 있었다. 이러한 행동 혹은 성향은 넓고 얇은 관계가 아닌 좁아도 깊은 관계를 지향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어린 시절과 같은 부러움보다는 신기함이 앞섰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언제나 누가 다가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기하다 말하는 이유는, 보통 우리가 인기가 많거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클리셰와 같은 것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매력은 딱히 없고 항상 먼저 찾아주는 경우가 적은 나도 친구는 꽤 많다. 뭔가 이상하다. 앞서 말한 것과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 모순은 내 성향에 기인한다.


나는 외로움을 꽤 느끼고, 사람은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존심도 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이 두 속성의 함량이 바뀔 때마다 심심하니까 연락하거나, 왜 나만 먼저 놀자고 하지 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삶이 숙성되며 이런 생각이 유치하다 느꼈다. 그래서 생각나면 연락해 보고, 그렇게 만나고 하는 교류가 여러 친구들과 이어졌다.




첫 연애가 끝난 뒤였다. 서로가 처한 상황, 말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우리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연애의 마침표를 찍었다. 헤어진 뒤 오는 감정은 적잖이 슬프고 꽤 많이 허무했다. 그때부터 어쩌면 우정은 언제나 남아있는 것, 사랑은 사라지기 쉬운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삼십 대를 시작하며 이 생각도 꽤나 달라졌다. 언제나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모임방은 더 이상 시끄럽지 않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가던 대화가 이제는 한 달에 한 번도 많은 수준이 되었다.


이것은 처음은 아쉬움으로, 그다음으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가정이 있는 친구들과 일이 많이 바쁜 친구들 등 각자 사정이 있는 것이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뜸해졌으나 멀어지진 않았다 생각한다. 매년 꾸준히 여름휴가를 보내며, 그때마다 오래전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오랜만에 보았을 때 더 좋고 반갑지만, 별생각 없이 아무런 말이나 하며 원초적인 것에 웃음 짓던, 왁자지껄 하던 그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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