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 단위가 점점 커진다고 느껴진다. 고등학교 몇 학년, 대학교 몇 학년을 회상하다가 이제는 고등학교, 대학교, 사원, 대리 정도로 묶인다.
해가 들수록 1년이라는 시간 단위가 점점 짧아지는 탓도 있다는 생각이다. 10살의 1년과 30살의 1년은 그 비중이 다르다는 말이다.
어릴 적에는 리뷰처럼 과거를 돌아보곤 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작년 이맘때 뭘 했는지 기억을 꺼내보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때는 시간과 경험이 큼직해서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은 작년 여름과 재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 헷갈릴 때가 있다. 시간 단위가 짧아진 탓인지 그저 나이가 들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20대 이후 뇌리에 박혀있는 주된 감정 혹은 느낌은 ‘공허’였다. 난 청춘의 다채로움을 한껏 즐기진 못했지만, 그저 덧없이 보내지도 않았다.
언제나 스스로 정의했듯 성향이나 성격은 평균값 끄트머리 어디에 있다고 느끼지만, 겪어온 것은 보편적이었다.
항상 가까운 곳에 우정이 있었고, 적당히 사랑받았으며, 꽤 오래 사랑을 했다. 그럼에도 이토록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모른다. 이 감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비어 있기라도 하듯, 이따금 더없이 가벼움을 느낀다. 이를테면, 영혼이 온전히 육체에 겹쳐져 있지 않은 느낌. 잠에서 막 깬 듯한 기분. 이것은 잠깐씩 스쳐 가기도,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그냥 기분 혹은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로 인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긴 적은 없다. 다만, 이 싱크로율이 떨어질 때면 그게 무엇이든 무뎌지곤 한다.
하고 있는 일이 잘되도 그렇게 좋지 않고 잘 안되도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감정도 비슷하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커튼 넘어 들어오는 빛처럼 산란되는 것이다.
어릴 적, 할머니는 내게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을 답답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딱히 역마살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면 할머니가 말한 역마는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언젠가, 어딘가를 떠돌다 무언가를 놓고와서 마음이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