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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Nov 17. 2019

자전거 여행기 07

“이 길 맞아?” 아내가 몇 번씩이나 물어도 길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길이었다. 눈앞에 까마득한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오르고 올라도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잠깐씩 내리막길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더 높은 오르막길을 오르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나보다 먼저 지쳐버린 아내가 자전거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둘 다 자전거를 끌고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없이 거친 신음만 서로 주고받았다. 


서귀포 서문 로터리의 언덕을 보자, 아내는 절망했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내의 얼굴은 폭발 직전의 표정이었다. 간신히 분을 삭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조심스럽게, 아내의 눈치를 봐가면서 언덕을 올랐다. 등 뒤에서 아내의 욕지거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서귀포의 숙소를 민중각으로 잡자고 한 건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민중각은 몇 년 전 올레길을 걷다가 묵었던 숙소였다. 낡고 허름한 숙소였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그때가 그리웠는지, 아내는 민중각을 고집했다. 나도 싫지 않았다. 


서귀포가 이렇게 높은 곳이었는지 잊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민중각이 서귀포 시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떤 정신으로 자전거를 끌고 민중각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민중각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자전거를 내팽개쳤다. 


민중각 주인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가 이곳에 묵었던 게 꽤 오래전이었는데 혹시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었다. 기억해서가 아니라, 기억할만해서 그랬던 거였다. 주인장은 여기까지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이 자기는 가장 존경스럽다고 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마땅히 존경받을 짓을 한 우리는 방에 눕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아내가 내게 고백했다. 자전거를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내내 한 가지 화두만 생각했다고. 저 남자랑 평생을 살 수 있을까? 그러면서 처음으로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고 털어놓았다. 뭐라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더는 오를 곳이 없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내일부터는 내리막길이라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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