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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Nov 17. 2019

자전거 여행기 03

당당하게 자전거를 끌고 매장을 나섰는데, 얼른 자전거에 올라타지 못했다. 뒤따라 나온 사장이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왠지 지금 자전거에 올라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골목으로 좌회전할 때까지 자전거를 끌고서 이동했다.


사장의 눈에서 마침내 벗어나자마자, 부리나케 자전거에 올라탔다. 느낌이 이상했다. 생애 처음으로 올라탄 MTB 자전거는 지금껏 탔던 자전거와 달랐다. 달라도 한참 달랐다. 여러 차례 안장 높이를 조절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우리가 탄 자전거는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나만 어색한 게 아니었다. 아내도 자전거에 올라타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다. 자전거에 올라탄 아내와 나는 흡사 곡예를 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똑바로 달리지 못하고 지그재그로 달렸다. 둘 다, 십 미터를 가지 못하고,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이 자전거 타고 과연 제주도를 일주할 수 있을까? 일단, 오늘 애월까지 갈 수나 있을까? 당장, 눈앞의 100m를 달릴 수나 있을까? 아니면, 차라리 지금 포기할까?


자전거를 탄 게 아니라, 말 등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길들지 않은 야생마에 억지로 올라탄 기분이었다. 기어를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바꾸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브레이크는 왜 이렇게 민감한 건지, 살짝 눌렀는데도 멈춰 섰다. 페달을 밟고 있는 발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고, 안장은 높여야 하는지 낮춰야 하는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당황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끙끙대며 자전거와 씨름하는 모습이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불안한 마음과 불안정한 자세로 얼마나 달렸을까? 아내가 갑자기 구조요청을 해왔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단다. 달리면서 이것저것을 자꾸 건드려 보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헛바퀴가 돈단다. 살펴보니, 멀쩡했던 체인이 빠져 있었다. 다행히도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건 체인을 끼우는 거였다. 그나마 미리 영상을 보고 예습을 해놓은 덕분이었다. 


출발한 지 5분이나 됐을까? 용두암이 보이는 정자에 앉아서, 빠진 자전거 체인을 끼웠다. 손은 기름때로 금방 더러워졌지만, 아내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자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이제 막 출발했는데, 몸은 이미 제주를 한 바퀴 돈 것 같았다. 


넋 놓고 바다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돌아보니, 자전거 매장의 사장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쫓아온 듯했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요.” 얼떨결에 둘러댔지만, 사장의 표정은 굳어 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사장에게 물었다. 자전거가 걱정돼서 쫓아온 거라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여기서 자전거를 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밥 먹으러 가는 길이에요.”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장의 대답이었다. 집이 바로 인근이라는 사장은 그 말만 남긴 뒤, 쏜살같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괜한 의심을 했다. 괜한 기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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