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전거에 올라 30분이나 달렸을까? 이번에는 자전거가 문제가 아니라, 몸이 문제였다. 긴장감에 잔뜩 주눅 든 몸 탓인지, 허기가 잔뜩 몰려왔다. 기적처럼 눈앞에 편의점이 등장했다.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편의점 삼각김밥을 오물거리며 먹던 아내가 물었다. 갑자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하마터면 입안의 면발을 모두 뿜을 뻔했다. 너무 놀라서, 라면 한 가닥이 코로 빨려 들어갔다. 마침 컵라면에 코를 박고 있던 터라, 그나마 표정을 감출 수 있었다. 라면 국물을 천천히 들이켜며 생각해 보았다.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지. 포기하는 것도 용기는 용기니까.’ 마음이 정리되니 한결 편했다. 컵라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내에게 그만두자고 말하려는 순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일단 애월까지는 가보자.” 아내의 판단이 나보다 조금 빨랐다. 그 순간, 코로 들어갔던 한줄기 라면이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지 뭐.”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몸은 자전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불편한 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탔을 때보다는 한결 편안해졌다. 여전히 미숙하긴 했지만 기어도 바꿀 수 있었고, 민감한 브레이크도 제법 조작할 줄 알게 되었다.
몸이 자전거에 슬슬 적응해 가자, 새로운 골칫거리가 등장했다. 바람이 문제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자꾸 앞길을 막았다. 우습게 볼 바람이 아니었다. 방심하는 순간, 중심을 잃게 할 정도로 세게 불었다. 20kg에 육박하는 짐가방을 자전거에 실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나보다 가냘프고 가벼운 아내는 더 힘들어했다. 바람이 부는 오르막길을 오르는 건 자살행위 같았다. 다리도, 심장도, 마음도 다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날아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지도로 볼 때 가깝게만 느껴졌던 애월은 도무지 나타날 줄 몰랐다. 신기루를 쫓아가는 마음이 이런 걸까? 아직도 멀었냐고 연신 재촉하는 아내에게 거의 다 왔다고 대답하는 것에도 슬슬 지쳐갈 무렵. 거짓말처럼 애월이 눈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이정표의 등장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걸까? 숙소를 지나쳐 버렸다. 아내가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어디까지 달려갔을지 알 수 없었다.
일찍 도착하면, 주변을 돌아보겠다는 계획은 욕심이었다. 동네 구경은 일단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치고, 무조건 눕고 싶었다. 내 몸인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한순간에 긴장이 풀려버린 근육들이 여기저기서 통증을 호소해 왔다.
눕고 나서 보니, 슬슬 잠이 몰려온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25km를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해안도로는 모두 평지일 거라고 착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이 몸을 이끌고, 내일 자전거에 다시 오를 수 있을까? 나보다 아내의 몸이 걱정이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먼저 잠에 곯아떨어진 아내는 계속 신음을 냈다. 악몽을 꾸는 건지, 가위에 눌렸는지, 평소에 듣기 힘든 소리였다. 제발 도와 달라고 누군가에게 소리치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