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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Nov 17. 2019

자전거 여행기 06

“자기 혹시 엉덩이 안 아파?” 

“어! 어떻게 알았어? 엉덩이 많이 아픈 거?” 혹시나 해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는데, 나와 증세가 같았다. 엉덩이 아픈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니. 딱딱한 자전거 안장 탓만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내도 나처럼 엉덩이에서 불이 난다고 호소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전거 안장에 앉아 있어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엉덩이가 배겨 나지 못한 게 당연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둘 다 엎드린 채로 잠이 들어 버렸다. 


자고 나면 엉덩이가 나아질 거라고 믿었는데, 아침에는 자전거 안장에 앉지도 못할 정도였다. 오늘 서귀포까지 40km를 달리려면, 아픈 엉덩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아내가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마트에 가서 아내가 구해온 건, 두툼한 여성용 생리대였다. 

“지금 내 엉덩이에 생리대를 붙이라는 거야? 차라리 기저귀를 입는 게 낫지.” 

“보이지도 않는데 뭐 어때? 기저귀는 너무 커서 불편하다니까. 나 한 번만 믿어 봐. 이게 짱이라니까.”

아무리 엉덩이가 아프다고 해도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여성용 생리대를 붙이고 자전거를 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아내는 엉덩이가 두툼해져서 나타났다. 바지 안 엉덩이에 생리대를 붙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아내 말을 끝내 거부한 채, 자존심을 꿋꿋이 지켜가며, 맨 엉덩이로 자전거에 올랐다. 잠깐 달렸는데도, 엉덩이를 안장 위에 잠시 올려놓는 것조차 힘들었다. 엉덩이에 도깨비불이 붙은 기분이었다. 나와 다르게 아내는 표정이 맑았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생리대 붙이니까 엉덩이 안 아파?” 일부러 자전거를 세우고 아내에게 물었다. 정말 안 아픈지 궁금했다. “하나도 안 아파. 자기도 한 번 붙여보라니까. 자존심이 뭐가 중요해. 몸 안 아픈 게 중요하지.” 

“그런가?” 못 이기는 척, 숨어서 엉덩이에 생리대를 붙였다. 그러고 나서 안장 위에 올랐더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미련스럽게 지금껏 고집을 부린 게 억울할 정도였다. 자존심을 살짝 내려놓으니, 세상이 달라졌다. 여자 생리대는 생리할 때만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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