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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Nov 17. 2019

엄마가 죽였어

때 이른 무더위가 설쳐대는 6월의 어느 날. 장모님, 아내, 나 이렇게 셋이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더위에 힘들긴 했지만, 모처럼 만의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집이 바로 코 앞이었다. 보행자 녹색 등을 기다리는 건 우리 셋만은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 중인 초등학생 두 명도 함께였다. 


갑자기, 성격 급하신 장모님이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려고 하셨다. “엄마! 빨간불이야!” 가까스로 아내가 장모님 앞을 막아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뻔했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놀란 아내는 다짜고짜 장모님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다쳤으면 됐지 뭐.” 변명인지, 사과인지 알 듯 모를 듯한 장모님의 한 마디에 아내의 목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장모님은 차츰 말수가 적어지셨다. 장모님의 침묵이 길어지자, 아내의 언성도 잦아들었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주변이 고요해졌다. 마치 모든 소리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만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적막을 가장 먼저 깨뜨린 것은, 놀랍게도 아내의 비명이었다. 간발의 차이였지만, 아내의 비명 말고 다른 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람을 힘차게 가르는 소리였다. 소리는 등 뒤에서 앞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뒤이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첩한 손놀림이었다. 장모님의 손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우렁차던 풍차 소리는 허공을 가르는 소리에 막혔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아내와 나 사이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커다란 검은색 벌레였다. 듬성듬성 하얀색 반점이 찍혀 있는 벌레였다. 


이게 무슨 곤충이지? 흔히 보는 곤충은 아니었다. 호기심을 못 참고, 한 발자국 다가가는 순간. 나보다 더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었다. 장모님이었다.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곤충과 가까워진 사람은 장모님이었다. 어떤 곤충인지 장모님은 궁금해하지 않으셨다. 대신 아주 빠른 동작으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곤충을 발로 밟으셨다. “네가 뭔데 내 딸을 위협해! 어디서 감히 내 딸을 공격해? 왜 내 딸을 놀라게 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소리를 지른 아내도, 곁에 서 있던 나도, 집에 가던 초등학생도,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발밑의 곤충은 날개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함부로 딸을 놀라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날개를 떠는 모습이 꼭 잘못을 빌고 있는 사람의 손 같았다. 곤충은 몇 차례 날개를 떨더니, 더 움직이지 않았다. 


위협으로부터 무사히 딸을 보호한 장모님은 개선장군처럼 서 있었다. 얼굴은 악의 무리로부터 딸을 구한 히어로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지긋이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얘야! 뭐하니? 엄마가 너를 구해줬으니 어서 고맙다고 해야지.’ 굳이 말씀은 안 하셨지만, 장모님의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아내는 장모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곤충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아내는 더는 곤충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았다. 죽은 곤충은 아내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내는 장모님에게 끝내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엄마가 장수하늘소를 죽였어!”

아내에게서 튀어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딸의 반응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장모님의 표정이 그렇게 되묻고 있었다. 

“엄마가 지금 천연기념물을 죽였다고.”

아내의 말은 바로 효과가 있었다. 환하게 미소 짓던 장모님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제야 가만히 있던 나도 슬그머니 거들었다. “어떤 벌레인지 확인 좀 해보고 잡으시지 그러셨어요.”


곁에 서 있었던 초등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태어나서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걸 목격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호등의 불빛은 오래전에 붉은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녹색 등이 깜빡이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단 한 사람, 장모님만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신호등은 이미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내는 무단횡단을 하는 장모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붉은 신호등 탓인지, 장모님의 낯빛도 붉었다. 붉다 못해 검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 집에 도착한 아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죽은 곤충이 어떤 곤충인지 찾아보았다. 검색 결과, 장모님이 죽인 곤충은 흰 점박이 장수하늘소가 맞았다. 국내 환경부에서는 멸종 위기 곤충이라고 했고, 해외에서는 가로수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방제 연구 중인 곤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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