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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Nov 12. 2016

시장과 공원이 우리를 위로한다

런던 여행 8 - 포토벨로 마켓 들렀다 하이드파크까지 산보한 날

사는 게 힘들 땐 시장에 간다. 

시장엔 살아가야 할 삶의 좌판이 펼쳐져 있고 사람을 살리는 '살림'할 거리가 지천이며 고색창연한 역사를 지닌 시장의 한 모퉁이에는 힘든 현재를 이겨낸 이들의 진한 과거사가 훈장처럼 남아있을 수도 있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시장에 들어서면 진드기처럼 지독하게 장사하는 시골 여인네도 있을 것이고 내 점포의 꿈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고 노점에서 시작하는 꿈 많은 젊은 인생도 있을 것이다. 


여기 런던의 명물 포토벨로 마켓이라고 해서 한국의 오일장이나 새벽 도깨비시장 혹은 상설 전통시장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 우리가 사는 게 허탈 해질 때나 참담해지고 한 없이 창피해질 때 비록 그것이 나의 개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하나의 '역사'일 때는 그런 역사를 보듬고 자라온 시장을 한 번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마켓 장사는 자연과의 전투라고 할 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런던의 날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마저 뭉실 뭉실하게 하늘에 척 걸쳐 있던 이 주말은 그야말로 시장 장사하는 분들에겐 최고였고 나 같은 여행자에게도 감사한 선물이었다. 이런 날씨엔 역시 패셔니스타 영국인의 아름다운 색감이 그대로 드러났고 마켓에는 컨테이너를 열어젖히고 세계 만물을 팔아 재끼는 전문가가 안 보여서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모두 작고 앙증맞은 가방들이 지천이었고 이런 양철 판때기도 매력적, 저렇게 한복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앤틱 한 가방들도 매력적이었다. 이 가방들은 오래간만에 여인네의 마음을 들쑤신 품목이었으나 가격은 사악했으므로 그냥 지나쳤다. 시장은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물건은 다양했으며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빠에야 가게 앞은 문전성시였다. 여기서 이 시장의 터줏대감이기도 하다는 '폴 스미스 Paul Smith'씨를 만났다. 그 유명한 폴 스미스와 이름과 성도 같다며 저 뒤쪽에 정말 명함으로 걸어놓은 이름이 폴 스미스였다. 이 분은 가죽 가방과 허리띠 그리고 가죽 신발, 캐시미어 등 나름 고가의 품목을 구비하고 계셨는데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물론, 한국의 교육이 왜 그렇게 훌륭하냐며 한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셨다.



독일에서 살 때 그들에게 한국은 '미지의 나라'였다. 한국에 관한 보도는 북한과 관련된 것만 매체를 탔고 한국에 데모라도 났을 때면 어김없이 공영매체에서 보도가 나왔다. 한국의 발달된 IT나 세련된 음식과 패션은 물론 카페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손에 쥐어 주는 벨은 궁극적인 블랙홀처럼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보도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한국의 교육에 관해 상당히 긍정적인 다큐를 방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육이라는 공식으로 이분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뼛속까지 영국인인 스미스 씨는 매력적인 영국 악센트로 처음 만난 여행객에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는 열정에 신이 나셨다.


저 시골 오일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나물 판 돈이나 저 험한 고갯길을 넘어가서 고등어를 팔아 온 돈 혹은 바람 난 남편을 대신해 삯바느질로 벌어 온 돈으로 자식들 입에 먹이고 학교 보내고 박사 만든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계시다. 지금은 80대를 향해 가시는 그 세대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상사 눈치 보며 늦은 밤까지 서류 고치고 손에 쥔 돈으로, 못 먹는 술 먹어가며 번 한 달 월급으로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공사장에서 벽돌 날라 벌은 돈으로 공부시킨 사람들, 바로 70대를 넘어 80 대를 넘어가는 세대의 아버지들의 이야기다.그 세대에겐 종교와도 같았던 "난 못 배웠어도 내 자식은 어떻게서든 공부 뒷바라지해 줄 거야!"


폴 스미스 아저씨를 통해 가슴 아픈 우리 부모님 세대의 헌신과 정체된 민주주의를 다시 떠올린다. 이래서 시장에 가는구나... 감사하려고, 살아보려고, 힘을 내려고,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듣고 물어보며, 형형색색의 못 입을 것만 같은 옷가지에 신기해하며 하루 종일 포토벨로 마켓에서 뒹기적거리다 날씨가 하도 좋아서 하이드 파크에 가서 다시 뒹굴뒹굴하기로 했다. 한국처럼 날씨 좋고 비가 적은 나라에서는 햇빛이 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햇볕이 부족한 독일에서는 일단 해가 나면 만사 제쳐두고 나가서 햇살을 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러니 풀밭만 보이면 해를 쪼이는 것! 그것이 하나의 문화였다. 여기 영국도 그럴까? 한번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와우! 하이드 파크는 옛날 왕실의 사냥터였다고 하니 이건 그냥 생각할 수 있는 규모의 공원이 아니다. 그냥 넓디넓은 초지에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공원 이미지에 충실한 딱 그런 곳이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쉬고 싶을 때 책 한 권 들고 스마트폰으로 음악 들으며 담요 한 장 가지고 나와 뒹굴거리면 참 좋은 그런 공원이었다. 여긴 금융 중심지 런던 답게 참 시크하게 검은 정장 차림으로 한 손에 샌드위치와 테이크 아웃 커피 컵을 든 사람들이 많이들 온다. 공원이라면 노루도 뛰어다니고 토끼도 뛰어다니고 아니면 백조라도 있어야 하는데 정말 신기루처럼 백조들이 있다.



이날은 하늘 구름이 정말 환상적인 날이었다. 살벌한 경쟁구도에서 젊음과 여유를 저당 잡힌 삶이 당연한 삶인 줄 알다가 가끔 이런 단순한 요구가 '쉴만한 물가'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하고 물을 때가 있다. 여행을 할 때! 여행을 하면서도 떨칠 수 없는 여러 상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한 때가 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삶이 다가 아니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지만 어느 때는 표면의 미학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다.


여기 근처에 '다이애나 황태추모의 샘'이 있다. 2004년 7월 5일에 세워진 이 추모의 샘은 미국 조경가 캐드린 구스타프슨에 의해 다이애너의 삶을 회상하도록 고안됐다고 한다. 가로 80m, 세로 50m 크기의 이 샘은 7백 t에 달하는 5백45개의 크고 둥근 콘웰 산 화강암들로 주위를 둘렀다는데 둘레 210m의 분수대의 타원 중앙은 어린이 놀이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정말 화창한 이 날 어린이와 어른들로 이 샘 주변은 아주 신나는 놀이터였다.



이런 멋진 날에 어린이가 신나고 어른들도 신나는 하루를 선사한 곳은 다름 아닌 영국 왕실의 스캔들로 비운의 주인공이 된 한 여인을 추모하는 곳이다. 이 곳을 설계한 캐드린 구스타프슨은  이 곳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고 황태자비를 추모할 수 있기를 바랐나 보다.


한없이 쾌청한 날씨에 달리의 그림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구름이 걸쳐져 있던 런던의 하늘이 압권이다. 영국 왕실의 추문과 비운을 영원히 각인시키는 하이드 파크의 <추모의 샘>에서 우리나라의 위대한 유산도 함께 생각해본다. 어린이들이 늘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광화문 광장이 이곳과 어쩐지 닮아보인다. 한여름에 어린이들이 물기둥을 뛰어다니며 노는 그곳에서 늘 역사의 함성이 들린다. 억울한 이들의 신문고이자 어린아이들의 놀이터, 외국인들의 포토존인 이곳에 언제쯤이면 신문고보단 실개천 흐르는 공원의 아늑함이 찾아올까! 대한민국의 역사를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가머 읽게 만들어 놓은 이곳을 떠올리니 하이드파크의 추모의 샘이 오늘 따라 더 생각이 난다.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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