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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Oct 14. 2023

길 위에 내 공간이 생긴다는 건

6개월은 긴 시간이었다. 우선, 하얀 자동차가 뿌연 먼지로 뒤덮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만히 세워둔 차는, 온 세상 먼지를 다 끌어모은 듯한 몰골로 변해갔다. 말끔했던 차 유리 위로 뿌연 먼지가 내려앉는, 딱 그 정도만큼 사고에 대한 기억도 흐려져 갔다. 사고 직후엔 컬러로 무한반복됐던 사고 장면이 어느 순간부터는 자동재생되지 않았다. 잠도 잘 잤고 밥도 잘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복직이 다가오면서 차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갔다. 저대로 세워둘 수는 없는데 어떡하지. 차를 팔아버릴까? 중고를 산 데다 사고 이력까지 남은 차를 파는 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운전을 그만둔 걸 후회하면 어쩌지. 나중에 차가 필요해지면 더 큰돈이 들 텐데. 

6개월은 그런 시간이었다. '절대로 다시는 안 해' 같은 다짐이 약해지는 시간. 타인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이 조금 옅어지는 시간.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거면 그만둬야지' 생각했던 나는 '아이와 다닐 일이 앞으로 더 많아질 텐데' 하는 핑계를 대며 운전을 다시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나는, 가해자인 주제에 죄책감을 눌러버릴 수 있는 인간이었다. 철저히 내 입장에서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기로 결심했다. '팔지도 못하고 세워둘 거면 타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서 운전을 시작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기에, 또 10시간의 연수를 받았다. 운전 초기에 받았던 두 번의 연수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세 번째 연수 후에는 '10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6개월 전 기억을 죄다 까먹지는 않은 느낌이랄까. 차분히 경험치를 쌓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걸 이미 배워버려서 그런 기분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가해자가 되는 일 같은 건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복직을 했고, 직접 운전을 하는 출퇴근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닌 지 무려 13년(!!)이 되었을 때였지만, '내가 운전하는' '내 차'를 타며 출퇴근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도보로 걷던, 익숙했던 출근길이 바뀌었다. 차에 앉은 채 스르륵 주차장까지 진입, 몇 미터만 걸으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주차장-회사 주차장으로 출근길이 단순화 됐다. 이 단순화의 단점이라면? 다리가 퇴화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 일부러 시간 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걸어 다닐 일이 정말 줄어든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 단점은, 출근시간에 쪽잠을 잘 수 없다는 것.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눈을 감고 멍 때림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고, 20여 분 눈을 감았다 뜨며 개운함을 느끼곤 했었다. 운전을 하면서 그 개운함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눈을 감는 건, '다 죽자'는 결심 없이는 어려운 것이니까. 역시 남이 차려준 밥상이 최고, 운전도 남이 해주는 게 세상 제일 편하긴 한 거였다. 


그럼에도 '자차'에는 확실히 장점도 많았다. 세상만사 단점만 있는 일이 어딨으랴. 최고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날씨에 대비하기가 수월해졌다는 것. 비 오는 날, 옷이 젖을 확률이 확- 줄어들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버스정류장에서 회사까지 걸어가면 바지 아랫단과 신발이 흠뻑 젖곤 했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었다. 저녁 날씨가 추울 것 같으면 옆좌석에 카디건이나 점퍼를 준비해 둘 수 있었고, 여분의 우산도 차에 둘 수 있었다. 집에는 우산이 넘쳐나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사야 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줄어들었다. 

온갖 '독특한' 사람을 볼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좋았다. 버스나 지하철의 빌런들. 큰소리로 이어지는 육두문자 가득한 전화통화를 들을 일도 없었고, 버스 아저씨의 난폭운전에 영혼이 탈탈 털리는 불안감도 사라졌다. 나만 차분하게 운전을 하면, 별 스트레스 없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전을 하기 전 나는,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만 생각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기계장치 정도로만 바라봤달까. 막상 운전을 해보고 가장 크게 느낀 건 자동차가 그 자체로 하나의 '개인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내 차에 앉아 마스크를 벗고 코를 파면서 옆에 있는 버스를 바라보면 그 느낌이 더 절절하게 와닿았다. 버스 안 사람들은 모두 버스라는 공용 공간에 적합하고 적당한 무표정으로 마스크를 쓴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어, 너무 갑자기 끼어드셨어요", "차 겁나 막히네" 등 온갖 혼잣말을 떠들고 있는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자동차는 참 특이한 공간이긴 했다.  매우 '개방'된 도로 위에 있으면서도, 남이 함부로 침범할 수는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랄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묘한 경계로 어우러진 곳. 사무실이라는 공용 공간에 마련된 파티션 속 내 자리 같은 느낌이었다. 개방된 공간이라는 건 바꿔 말해 남들 눈이 닿는 공간이라는 의미였다. 사회적 인간에 걸맞은 행동이 요구되는 곳이랄까? 집에 혼자 있을 땐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홀딱 벗고 돌아다니는 수준의 자유가 가능했지만, 개방된 공간인 자동차 안에서 그 정도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귀를 뀌고 코를 파는 정도의 자유는 만끽할 수 있었다. '차에서 하면 안 될 일' 같은 게 정해져 있지도 않았으니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도 찰나의 순간을 공유할 뿐, 한 공간에 '함께' 머물고 있다는 식의 유대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타인의 시선이 닿는 곳이지만 오롯이 혼자라는 느낌도 있는 곳, 그곳이 자동차 안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요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알아가고 있기도 하다. 운전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익숙해질수록, 평소의 나와는 다른 '제3의 자아'가 발현됐다. 운전 초기엔 음악을 틀어놓고 운전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음악을 틀고 허밍 하듯 따라 부르는 정도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요즘은? 매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목이 터져라 크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원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던가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짓은 집에서도 전혀 한 적이 없었다. 이웃집에 소리가 들릴 것이 뻔한데 굳이 뭐 하러. 사회적 지위와 체면(.... 그런 게 있었던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노래를 잘하냐 묻는다면, 그건 더더욱이 NoNo. 고음불가 음치에 가까운 실력이었다. 


매일 똑같은 퇴근길, 꽉 막히는 정체구간을 지나면서 '졸림'이라는 놀라운 현상을 경험한 것이 이 난리부르스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운전하면서 졸 수가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퇴근길에서 멍-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는 이것이 말로만 듣던 졸음운전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졸음을 쫓으려 "아- 아" 소리를 내며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고, 때마침 잘 아는 노래가 귀에 흘러들었다. 처음엔 작게 작게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조금씩 목소리가 커졌고, 슬며시 창문을 닫았다. 옆차에서 들리고 보일 것이 뻔했으므로,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사람들이 모르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꽥꽥거리고 나니, 흥이라는 것이 차올랐다. 10cm였던 노래가 김윤아를 거쳐 선우정아와 박정현으로 흘러갔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요즘은 좀 무서울 정도다. 온갖 음이탈의 순간에 깔깔 웃다가, 다시 꽥꽥 노래를 부르며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라니.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익명성 아닐까. 내가 부르는 줄 어떻게 알 거야, 하는 확실한 믿음이 이런 짓을 부추긴다. 그리고 또 하나.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에서 꽥꽥거리고 나면 희한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 좁은 땅에 노래방이 그렇게나 많은 건 다 이런 이유였던 게 아닐까. 빡빡한 일상 중에 꽥꽥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서. 어쨌거나 죽기 전 없애야 할 물건이 하나 더 생긴 건 확실한 것 같다. 하나는 온갖 찌질한 감정과 뒷담화가 뒤범벅된 다이어리. 그리고 이젠 블랙박스도 반드시 없애야만 한다. 차 안에서 즐기는 은밀한 지랄발광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건 사양이니까. 이런 지랄발광은 자동차와 나만 아는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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