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의 운전이었다. 그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방학이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줄 일이 없었고, 딱히 약속도 없는 고요한 날들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학원에 간 동안 회사에 잠시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서류 문제도 처리하고 차도 움직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생각했었다. 무탈히 회사에 도착해 주차까지 성공.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20여 분의 거리. 아이의 귀가시간까지 1시간가량 남아 있었기에 충분히 여유도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횡단보도를 눈앞에 두고 차선을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통행량이 없는 이 위치에서 차선을 바꿔두면 집 근처에서 편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도 빨간불이었기에 그대로 차선을 바꿨다. 그리고 잠시 사이드 미러를 봤다. 왜 그랬을까. 차선을 다 바꾼 후에 왜 뒤차를 신경 썼을까. 이유 같은 게 있을 리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을 했을 뿐. 사이드미러에서 눈을 뗐을 때, 횡단보도 위의 자동차 신호는 빨강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차는 이미 횡단보도에 진입한 상태. 신호를 확인한 것과 거의 동시에 차 앞으로 자전거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어떤 일이 먼저였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반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은 것만 선명히 기억날 뿐.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동시에 차와 자전거가 부딪혔다. 그리고.. 자전거를 탔던 분이 튕겨져 나와 자동차의 보닛에 부딪히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상황에 말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바닥에 앉은 피해자를 눈앞에 두고도 나는 운전석에서 바로 내리지 못했다. 몇 초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보멍청이처럼 소리만 질러댔다.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하이톤으로 마구 소리만 질렀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도 알 수가 없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엄청난 광경 앞에 뇌가 정지되면, 고작 소리를 지르는 것 말고는 다른 행동을 떠올릴 수 없는 듯했다. 내가 악악 소리를 질러대는 동안,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들이 차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 모두가 운전석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제야 제정신이라는 것이 슬슬 돌아왔다. 이렇게 소리만 질러대고 있을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야 했다. 피해자, 피해자를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신호 바뀌는 거 못 봤어요?"
"핸드폰 보느라 신호 못 본 거죠?"
아직도 기억나는 사람들의 질문들. 웅성웅성 몰려든 사람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나에게 던졌지만, 한마디도 대답하진 못했다.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주저앉은 피해자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보였다. 피해자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며, 가해자인 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온몸을 떨어댔다. '괜찮으세요?' 묻고 싶었지만,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피해자 행세를 하고 싶었던 걸까. 당시에도 차분해져야 해, 온마음으로 외쳤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신호가 바뀌고 멈춰 있던 차들이 빵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해자분이 절뚝거리며 보행자 도로 쪽으로 움직였고, 나는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 차도 밖으로 옮긴 후 다시 차에 탔다. 차를 길가로 옮겨야 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런 게 될 리가 없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렸을 땐, 119 구급대와 112 경찰들이 모두 출동한 상태였다. 경찰관들이 차 유리에 붙은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고 "초보세요?"하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경찰관이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던가? 아무튼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다 몇 번이나 지갑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손이 너무 떨려 다시 주워올리는 게 힘들었다. 다친 피해자는 침착한데, 가해자는 제정신이 아닌 상황.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다가가 "괜찮으세요?"를 여러 번 물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괜찮으세요?"를 여러 번 물었고, 그럴 때마다 경찰관에게도 피해자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울컥울컥 들었다. 나는 왜 이리 멍청할까. 남들 다 하는 운전, 그걸 못해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사고 수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개똥멍청이같으니.
보도블럭에 앉아 있던 피해자는, 부모님이 오시는 중이라며 119를 돌려보냈다. 그 부모님을 기다리며 나는 거듭거듭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다. 정말 정말 미안한 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 시간 내내 머릿속엔 두 가지 생각이 가득했다. 하나는 피해자에 관한 것. 내가 저지른 사고로 이분의 삶에 영향을 미칠 만한 큰 후유증이 남으면 어쩌나, 하는 게 가장 압도적인 걱정이었다. 이 젊은 청년이, 나 때문에 평생 다리를 절게 되면 어쩌지. 그런 게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이에 관한 걱정이었다. 횡단보도 초록불에서 사람을 쳤으면 구속되는 거 아닌가. 내가 집에 못 가면 아이를 어쩌지. 이 걱정 또한 꽤 무거웠다.
피해자를 차에 태우는 가족들을 향해서도 여러 번 머리를 숙였다. 부모님의 눈에는 미움이 가득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으셨다. 경찰관들은 추후 피해자분과 합의 여부 등으로 진행 상황을 알려줄 테니, 일단 집으로 가 있으라고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흩어진 지 오래. 도로는 완벽하게 사고 전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곳엔 번호판이 떨어진 내 차와 아직도 손을 벌벌 떨고 있는 나만 남아 있었다. 아이의 귀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움직이긴 해야 했다. 길가에 세워둔 차를 빼는 게 가장 시급한 일로 보였다.
내가 차 쪽으로 다가가자, 아저씨 한 분이 긴 노끈 하나를 들고 내게 다가오셨다. 사고가 났던 도로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한다고 본인을 소개한 아저씨는, 노끈을 내미셨다. 웬 끈? 노끈을 받아 든 그 자세 그대로 멈춰있자 아저씨는 번호판을 가리키시며 노끈을 다시 가져가셨다. 그리고는 떨어진 번호판 구멍에 노끈을 넣어 차 앞쪽 여기저기에 직접 묶어주기까지 하셨다. 번호판 없이 다니면 불법이라고 하시면서. 생전 처음 본 분이 베풀어주는 친절에, 멈췄던 눈물이 다시 그렁그렁 차올랐다. 훌쩍 거리며 아저씨와 함께 번호판을 차에 묶었다.
"혼자 갈 수 있겠어요? 누구를 부르는 게 낫지 않아?"
"아.. 네. 진짜 감사합니다. 인사드리러 다시 들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대답과 함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운전석에 앉았다. 사실 피해자가 부모님을 부르는 그 순간즈음부터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너무나 하고 싶었다. 누구? 하나둘,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핸드폰을 들었지만 차마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쁠 이들이었고, 그들의 일상마저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 운전을 하기가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저지른 일, 내가 감당하는 게 맞았다.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천천히 달팽이처럼. 스스로가 싫고, 이 순간이 싫고, 도움 청할 이 하나 없는 신세도 서글퍼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피해자분은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골절이 아닌 타박상으로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보험사와 원만하게 합의도 해 주셨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 가해자인 나를 제외하고, 세상 모두가 선하다는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다. 번호판을 달아주신 아저씨와 피해자와 그 가족까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았다. 그 아저씨가 번호판 달기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피해자가 합의를 안 해줬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 이후 한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설핏 잠이 들면 사고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보닛에 부딪히던 피해자의 몸, 쿵-하는 울림, 몰려오던 사람들의 눈빛. 밤마다 잠을 설치며 매일 피해자를 떠올렸다. 가해자인 내가 이 정도 후유증을 겪는데, 온몸으로 부딪힌 그분은 어떤 상태일까. 비가 올 때마다 다친 곳이 아프진 않을까. 눈을 감을 때마다 사고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까. 횡단보도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면 어쩌지. 가해자 주제에 트라우마는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불면쯤이야 받아들이는 게 옳았다.
사고 후 차는 수리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멀끔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 차를 다시 운전할 마음은 도무지 생기질 않았다. 운전을 다시 하는 게 맞을까? 방향치니 몸치니 하는 내 단점을 극복하는 건 순전히 '내 세계'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 극복 과정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라면?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차를 그대로 방치했다. 사고가 나고, 복직하기까지 6개월. 차는 주차장 한 구석에서 자리만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