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날엔 Oct 06. 2023

골목길을 지나다 쌍욕을 들어버렸네

자주 멍이 생겼었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20kg 남짓 쪄버린 무렵, 팔 다리를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녀 온몸 곳곳에 멍자국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간의 공간 지각능력에 대해 생각했었다. 내가 내 몸의 크기를 '가늠'한 상태로 행동을 해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달까. 내 뇌는 짧은 기간 급격히 커져버린 몸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별 생각없이 후다닥 움직이면 책상 모서리나 파티션 등에 세게 부딪혔고, 아픔을 느낀 후에야 예전의 몸을 생각하며 움직였음을 깨닫곤 했었다.  


운전을 하다보면 종종 20kg이 쪘던 그때가 떠올랐다. 내 몸의 크기는 이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됐지만, 이 몸이 들어앉은 차의 크기는 도통 짐작이 되질 않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차 크기에 대해 감을 잡아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내게 감은 그저 과일일 뿐. 손도 안 닿는 곳에 있는 감을 어떻게 잡으란 말일까. '이 정도면 되겠지?' 하다가 차 엉덩이를 긁고, '이 정도 공간은 충분히 지나가지!' 하다가 가게 입간판을 박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만 갔다. 그랬기에, 좁은 골목길에선 절로 움츠러 들었다. 내 차가 긁히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지만, 남의 차를 긁는 건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내가 사는 빌라는 좁은 골목길 한 중간에 서 있었다. 빌라들이 늘어선 골목. 자동차들이 건물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길가로도 쏟아져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길 양쪽으로는 주차된 차들이 가득했고, 의아할 만큼 통행량도 많았다. 골목에서 대로를 향해 가는 차들의 흐름이야 당연한 것 같았지만, 대로에서 이 골목으로 들어오는 차들도 많았다. '대체 어디를 가는 차들이 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일까'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집에 와본 이들의 소감도 늘 비슷했다. 

"이 동네 왔다갔다 하면, 절로 운전이 늘겠다."

운전 연수 당시 선생님들도 이 골목은 통과가 어렵다고 입을 모아 말했던 곳. 한마디로 말해, 초보운전자에겐 최악의 코스에 나는 살고 있었다. 


그날 역시, 골목길을 통과하던 중이었다. 대로로 나가는 앞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길래, 그 꽁무니를 좇아 움직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1등으로 차량들을 이끄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꼴찌로 졸졸 좇아가는 건 쉬운 일이니까. 

'저 큰 차가 통과하는 공간이면 나도 갈 수 있어.' 

너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기에, 보통 때의 상황보다 차라리 나은 것도 같았다. 문제라면, 이쪽으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골목 입구에서 기다리는 상황이라는 것. 골목을 벗어나려는 나도 한참을 기다렸으니, 골목으로 진입하려는 차들 역시 꽤 오래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매너 있는' 행동인지를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눈치라는 것을 챙기며 살고 싶지만, 운전을 하면서는 어떻게 하는 게 눈치 있는 행동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내가 그저 보행자였다면? 좁은 골목길에서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누군가 멈춰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기다리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통행에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길가에 바짝 붙어 서 있으려 애도 썼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편이 마음 편할 테니까. 심지어 육아휴직 중인 상황. 급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덩치 큰 녀석 안에 몸을 구겨 넣은 지금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골목의 빈 공간에 바짝 붙여 차를 세우면 그들이 먼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길가에 차를 바짝 붙여 세울 '능력'이 내겐 없었다. 배려도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행할 수 있는 것. 능력 없는 나는 배려를 버리고, 앞차들을 열심히 따라 가기를 택했다. 




변명이 너무 길었나.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앞차 뒤를 졸졸 좇아갔다. 골목의 끝이 다가왔고,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행렬의 1번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70~8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운전석에 앉아계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 기다림에 매우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운전석의 창문을 모두 내리고 어깨와 한 팔을 문에 걸친 채, 지나가는 차들을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입으로는 무슨 말인가를 끊임없이 내뱉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들리진 않았지만 왠지 욕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결연하게 다짐했다. 저 차 옆을 통과하면서 절대로 저 할아버지 쪽을 보지 말아야지. 눈이 마주쳐서는 안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골목길을 지키는 해태(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전설의 동물. 절의 입구 계단에 무시무시하게 서 있는 석상)처럼도 보였다. 


앞앞차도 통과, 앞차도 통과. 험한 인상의 해태는, 아니 할아버지는, 그리 큰 액션은 보이지 않은 채 다른 차들을 통과시켜줬다. 그리고 길고 긴 행렬의 맨 마지막인 내 차례가 다가왔다. 곁으로 다가가니 할아버지가 몸을 창밖으로 한껏 내민 채 내가 앉은 운전자쪽 유리창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해태가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가. 아무튼 나는 아까의 다짐을 되새기며,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안 보인다, 안 느껴진다, 나는 앞만 본다, 나는 전진밖에 모른다... 오오, 무사통과?!라고 생각한 그 순간, 해태는 참고 참았던 분노를 엄청난 목소리로 쏟아냈다. 

"씨발년아! 운전 그따위로 할 거면 기어나오지를 마!"


기어나오다,라는 단어도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지만, 가장 길게 남은 건 정말 또렷이 들은 '씨발년'이라는 단어였다. 이런 쌍욕을 면전에서 이렇게 크게 들은 일이, 아무리 돌아봐도 40여 년 내 인생엔 없는 것 같았다. 골목길이 떠나갈 듯한 음량으로 쌍욕을 들을 만큼 내 잘못이 컸던가. 

차에서 내려 묻고 싶었다. 긴 행렬의 마지막 운전자에게 모으고 모은 분노를 뿜어낸 것이 맞는지를. 꼴찌로 길을 내려온 운전자가 남자였어도 같은 말을 같은 크기로 뱉었을 것인지가 정말 궁금했다. 희안하게도 나는 욕을 듣자마자 '머리를 묶었다면 성별을 헛갈려 했을지도 모르는데'하고 생각하며, 내 긴 머리를 탓했다. 돌아봐도 이상한 일이긴 했다. 나는 왜 대뜸 여자로 보인 스스로를 원망했던 것일까. 아무튼 할아버지는 호칭으로 성별을 콕 집어 주셨고, 듣는 년은 '년'이라 불러주시니 더 기분이 상했다. 역시, 싸움은 '선빵'을 날려야 하는 거였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선빵을 맞아버린 나는, 주춤주춤 거리다 KO패를 당한 기분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운전을 하면서 '여자라서 이렇게 대하는 걸까?'하는 생각을 한 적은 이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 성별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나는 너무 초보였고 그냥 '감'이 없었다. 도로 위의 내 존재 자체가 남녀 모두에게 민폐인 느낌이랄까. 끼지 말아야 할 고수들의 플레이에 툭 끼어버린 느낌으로, 내 눈에 보이는 모두에게 내가 폐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바로 '김 여사'였다. 운전에 서툰 여성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말. 운전대 앞에서 쩔쩔 대며 도로의 흐름을 방해하는 나를 보며 누군가가 "어우, 저것봐. 여자잖아. 그러니까 운전 저렇게 하지. 김 여사네 김 여사"라고 말할까봐 정말 두려웠다. 멋진 여성의 표본같은 게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나 때문에 여성 운전자 모두가 욕 먹는 상황은 정말 만들고 싶지 않았다. 초보라서 잘못하는 게 아니라, 여자라서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을까봐 걱정됐달까. 굳이 더 설명하자면 나는 이씨 집안의 딸이었기에, 운전 때문에 성이 바뀌는 일도 겪고 싶지 않았다. 


내 주변엔 운전을 잘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초보 시절을 지나면서는 다들 차를 끌고 여기저기 잘 다녔고, 여태 운전을 헤매고 있는 나를 보면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공감하질 못했다. "내 와이프가 나보다 운전 잘 해"하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많았다. 그랬기에 나는 정말 궁금했었다. 왜 '김 여사'라는 단어가 등장해서, 여성 운전자 전체 능력을 폄하하게 된 걸까. 좁고 좁은 인간관계를 살펴보고 깨달은 한 가지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이 운전을 시작하는 나이가 상대적으로 늦은 경우가 많았다는 것. 학교, 학원으로 자녀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운전을 배웠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니 전체 운전자 중 경험치 부족으로 헤매는 이들이 여자인 경우가 많은 게 아닐까. '여자로 태어났기에 운전을 못한다'는 것보다는, '남자 운전자에 비해 경험치가 부족한 여자 운전자가 좀 더 많다'는 쪽이 내게는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운전도 하나의 기술일 테니 경력과 경험치에 따라 숙련도가 달라지는 게 당연할 터. 나 역시 경력이 쌓이면 실력도 더 늘어가지 않을까. 


이런 내 생각과 아무 상관없이, 여자 운전자가 보이면 "씨발년"을 쉽게 뱉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엔 존재하리라. 쌍욕을 들었던 그날, 나는 한동안 억울해 했었다. 욕을 먹었다는 사실보다, 욕을 먹고도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는 게 기가 막혔다. 순식간에 기막힌 드립을 떠올려 그 할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해줬어야 했는데! 뇌 정지 상태로 어리버리 아무 말도 못한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았다. 인간은 경험치를 쌓아 성장하는 동물. 그날의 경험을 발판 삼아 나는 미리 대응책을 마련해 놔야겠다는 훌륭한 생각을 하게 됐다. 또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에 빙의해 생글생글 웃으며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며 말하고 싶다. 

"기어나와서 죄송해요, 씨발."

이 정도면 되려나. 아무튼 그렇게 외치곤, 액셀을 밟아 달아나야지. 엇... 달아나려면 일단, 운전 능력을 더 키우긴 해야 할 것 같다. 

이전 08화 빨강 노랑 초록 그리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