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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스(Pathos)

사게 만드는 감정

by 성민기
“이성은 판단할 뿐,
지갑을 여는 것은 감정이다.”


로고스가 “이성으로 설득”이었다면, 에토스는 “신뢰로 안심”, 그리고 파토스는 그 마지막 열쇠, “감정으로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감정은 행동을 일으킨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이 결정을 내린다.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환자들이 하루 종일 단 하나의 선택조차 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렇듯 이성은 판단을 돕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감정의 몫이다.
즉, 감정이 없으면 행동도 없다.


홈쇼핑에서도 그 장면은 매일 반복된다.
“좋아 보이네”라는 감정이 채널을 멈추게 하고,
“지금 사야겠다”는 감정이 구매 버튼을 누르게 한다.


감정을 흔드는 말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이 공감받는 순간 마음의 문을 연다.
그래서 파토스는 막연히 감정을 자극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대답하는 능력이다.

“나도 그래요.”


이 짧은 한 문장이 강의에서도, 세일즈에서도, 방송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토스다.

단순한 맞장구가 아니라, 상대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반영하는 공감의 기술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으로 나눈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이고, 정서적 공감은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


대화 속에서는 미러링(mirroring)과 감정 명명(naming) 화법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예를 들어, “답답하시군요”, “걱정이 앞서시는군요”처럼 상대의 감정을 언어로 되돌려주는 순간, 사람은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낀다.

공감은 감정의 반사가 아니라, 감정의 재현이다.
그리고 이 작은 재현이 청중의 마음을 여는 첫 열쇠다.


홈쇼핑이나 라이브커머스에서 고객이 “선물용으로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순간, 쇼호스트가 “네, 저도 부모님께 드렸어요.”라고 답하면 그 대화에는 공감과 신뢰가 동시에 생긴다.
감정은 이렇게 쉽게 연결된다.


TED 무대의 감정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의 “The Power of Vulnerability”는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녀는 자신의 실패와 불안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고백이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청중은 그녀의 강연을 통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봤다. 그 순간, 감정은 공감으로, 공감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파토스의 본질이다.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가 감정의 설득력을 만드는 이유다.


감정의 언어는 짧고 구체적이다

감정이 통하는 말은 복잡하지 않다.
“감동받았습니다.”보다
“그 말을 듣고 울컥했어요.”가 훨씬 강하다.


홈쇼핑에서는 숫자보다 감정 단어가 구매를 결정짓는다.
“이 제품을 쓰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하루가 가벼워집니다.”
“선물하시면 받는 분이 기분 좋아하실 거예요.”

이 짧은 문장들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은 논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논리는 감정을 정당화한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논리가 그 선택을 안정시킨다.


감정을 시각화하라
Before & After의 힘

감정은 시각적일 때 더 강력하다. 이때 비언어적인 액션을 통해 허리통증을 몸짓하며 멘트 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이 제품을 사용하기 전엔 늘 허리 통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가 훨씬 가볍습니다.”

Before–After는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변화된 나를 상상하게 하는 감정의 언어다.


고객은 수치를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제품을 쓰고 난 내 모습’을 기억한다.


긍정의 감정이 신뢰를 확장한다

심리학자 Barbara Fredrickson은 ‘확장-구축 이론(Broaden-and-Build Theory)’에서 긍정적인 감정이 인지 폭을 넓히고, 창의성과 판단력을 향상한다고 말했다.

즉, 기분이 좋은 상태일수록 사람은 더 쉽게 설득된다.
그래서 세일즈에서도 감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성과의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화자는 항상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감정의 설득은 크기가 아니라 진정성의 온도로 결정된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감정의 전환이 설득을 완성한다

감정은 긍정적인 것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불안, 결핍, 놓침에 대한 두려움이 더 빠르게 행동을 일으킨다.

“놓치면 후회합니다.”
“이제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지 마세요.”

이런 문장은 부정적 감정을 건드리지만, 그 목적은 ‘두려움을 조장’이 아니라
행동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감정을 그 부정의 지점에 머물게 하지 않는 것이다.
불안과 결핍을 제시했다면, 반드시 안정과 해결로 이끌어야 한다.


“놓치면 후회합니다” 다음엔
“지금 결정하시면, 더 편한 내일이 기다립니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마세요” 다음엔
“이제 당신의 일상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즉, 부정 → 긍정 전환 전략은
‘감정 자극’에서 ‘해결의 제안’으로 감정을 이동시키는 과정이다.
이때 사람의 뇌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며 행동하게 된다.

심리학자 Daniel Kahneman의 ‘손실회피 이론(Loss Aversion)’에 따르면,
사람은 이익보다 손실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따라서 부정적 감정은 ‘주의를 끌기 위한 자극’으로, 긍정적 메시지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작동한다.


결국, 좋은 파토스는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고,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설득의 기술이다.


감정이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

논리(Logos)는 머리를 납득시키고, 신뢰(Ethos)는 마음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감정(Pathos)이다.

감정은 설득의 마지막 퍼즐이다.
감정이 동하지 않으면 논리도, 신뢰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이 움직이면,
그 감정은 지갑보다 먼저 행동을 열게 한다.

사게 만드는 말은 감정으로 완성된다.


참고문헌

Aristotle. (2007). On Rhetoric: A Theory of Civic Discourse. Oxford University Press.

Brown, B. (2010). The Power of Vulnerability. TED Talk.

Fredrickson, B. L. (2001). The role of positive emotions in positive psychology: The broaden-and-build theory of positive emotions. American Psychologist, 56(3).

Damasio, A. (1994).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Putnam.

Gallo, C. (2014). Talk Like TED. St. Martin’s Press.

Heath, C., & Heath, D. (2007). Made to Stick. Random House.

성민기. (2024). TV홈쇼핑 쇼호스트의 이미지와 특성이 건강기능식품 구매에 미치는 영향.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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