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과 상황을 연결하는 상상력(imagination)

사람을 움직이는 건, 긍정적인 미래의 한 장면이다

by 성민기

우리는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을 가진 뒤의 미래 한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어울릴 빨간 머플러, 겨울방학 동안 아이가 쓰게 될 노트북, 부모님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 줄 온열 매트까지.

사람은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이 놓일 상황을 함께 상상할 때 움직인다.

그래서 판매는 스펙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상품을 통해 소비자의 하루가 어떻게 달라질지 보여주는 일이다. 어쩌면 판매자는 설명자가 아니라, 미래의 장면을 연출하는 영화감독에 더 가깝다. 사람들은 기능을 비교하다가도 그 물건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순간 결제를 결정한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숫자와 설명보다 사진 한 장, 문장 하나에 더 쉽게 반응할까? 인지과학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 에피소드 미래 사고 (Episodic Future Thinking)

하버드 심리학자 다니엘 샥터(Daniel L. Schacter)는

인간의 뇌가 미래를 추상적으로 사고할 때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카메라를 판매할 때 “화질이 좋은 카메라”라는 정보는 머리에 남지만, “아이의 첫걸음마 순간을 찍고 있는 내 손”이라는 장면과 멘트는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뇌는 계획보다 상황에 반응한다.


2. 미래 자기 연속성 (Future Self-Continuity)

사람은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이어져 있다고 느낄수록 지금의 선택을 바꾼다.

좋은 상품은 “언젠가 쓸지도 몰라”가 아니라 “내일의 내가 더 편해질 것 같아”라는 느낌을 준다.

이때 상품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다리가 된다.


3. 전향적 멘털 시뮬레이션 (Prospective Mental Simulation)

미래를 떠올릴 때 뇌는 단순히 생각하지 않는다.

미리 해본다. 상상이 구체적일수록 뇌는 이미 그 행동을 한 것처럼 반응한다.

그래서 구매는 새로운 결심이라기보다 머릿속에서 이미 살아본 미래를 현실에서 다시 실행하는 일에 가깝다.

물론 장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정이 문을 열면, 스펙은 “이 선택이 괜찮다”는 확신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장면을 만드는 세 가지 질문

잘 팔리는 상품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이 물건을 쓰는 순간, 내 일상에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
이 물건 덕분에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은 뭘까?
이 선택 이후, 나는 어떤 기분의 사람이 되어 있을까?

프라이팬을 예로 들어보자.

코팅력을 설명하면 주방 도구로 끝난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가족을 위해 팬케이크를 굽는 여유로운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 그 프라이팬은 주말의 기억이 된다.

중요한 건 언제나 기능보다 그 기능이 쓰일 상황이다.


우리는 설명서일까, 영화감독일까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다.

대신 달라질 상황을 먼저 고른다.

미래를 막연히 생각하게 하면 망설이지만, 미래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하면 선택은 빨라진다.

상품은 문제를 해결하는 물건이라기보다 상품은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건네는 매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확신이 가리킨 방향으로 조용히, 분명하게 움직인다.

오늘 당신의 말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을 그리고 있는가?


참고문헌

Schacter, D. L., Addis, D. R., & Buckner, R. L. (2007). Nature Reviews Neuroscience.

Hershfield, H. E. (2011).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Taylor, S. E., & Pham, L. B. (1999).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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