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
올 듯 말 듯 밀당을 하던 겨울이 갑자기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떨어진 기온을 피부로 느끼며, 지각을 해서 허겁지겁 교실로 뛰어들던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요, 올해는 정말 많이 늦으셨네요 겨울씨. 제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아세요? 11월이 벌써 반이나 지났다고요. 온갖 잔소리를 해가며 주섬주섬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꺼냈다.
작은 사람은 쪼르르 달려와 식탁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올해 봄, 미니 LED 전구를 미처 치우지 않은 덕에 크리스마스 준비는 매우 수월했다. 직접 그린 민트색 바탕의 마트리카리아 캔버스를 치우고 그 자리에 리스를 걸었다. 작년에 리스가 자리했던 곳에는 커다란 액자가 있어 그 옆으로 솔잎 가랜드를 걸어줬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등장하는 산타 클로스 아이싱쿠키 액자와 작년에 작은 사람이 만들어준 크리스마스 카드도 꺼냈다. 언젠가 구매한 겉옷에 딸려왔던 케이프는 잘 다려 나무 선반 위 덮개로 올려뒀다. 반짝, 불을 켜두고 캐럴을 들으며 작은 사람과 함께 기념으로 크리스마스 도넛을 먹었다.
액자에 갈아 끼울 겨울 사진은 클라우드 드라이브에서 찾았다. 2012년,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에 찍었던 사진이다. 흰색과 빨간색의 조화만큼 겨울에 어울리는 색이 있을까. 특별히 하네뮬레 페이퍼에 파인아트프린트를 맡겼다. 나에게 미리 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작은 사람이 등원을 한 월요일 오전,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던 숲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두 뺨이 제법 차가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작년에 샀던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컵에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를 담고, 전날 남은 크리스마스 도넛 하나를 먹으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흰머리가 성성한 나는 얇고 가는 안경테를 가운데 손가락으로 추켜올리며 뜨개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릎에는 포근하고 가벼운 담요를 덮고, 소곤거리듯 흐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 안을 가득 채운 시나몬, 클로브, 스타 아니스의 향과 함께 뱅쇼를 홀짝이고 있을 것이다. 겨울의 풍경 속에서도 포근함을 잃지 않을 나의 미래도 기대가 된다.
중년에 접어들어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아마도 추억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 정도의 마음이라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쉽게도 내 기억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텅텅 빈 쌀통을 보며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했던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런 시절에 크리스마스트리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성인이 될 때 까지도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었지만, 크리스마스만 되면 TV에서 방영해 주던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매년 그 영화를 보고 또 보며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킨 '해리포터'의 등장이었다. 그 이후로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매년 12월이 되면 해리포터를 되돌려보며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그때 생긴 부러움 때문인지, 작은 사람이 함께 한 뒤로는 더욱 크리스마스에 진심이 되었다. 나는 할 수 없었지만, 작은 사람에게는 이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꼭 알려주고 싶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트리는 없지만, 리스와 가랜드로 집 안에 크리스마스의 색을 더하고 함께 즐기며 계절과는 반대되는 이 감정을 나누는 것이 나에게는 큰 행복이 되었다. 작은 사람이 내 나이가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도록, 나는 이 작고 무용한 것들을 계속 지켜나갈 생각이다.
올해는 너무도 늦게 찾아온 겨울이 더욱 반갑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따스한 날들을 그리워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