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와 연차로 다시 찾은, 여유로운 마음
180918
요즘 회사에서 하는 모든 생각이 ‘나이 많은 신입 사원이라 그런가’로 흘러가고 있다. 쉣. 누구보다 내 나이를 신경 쓰고 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 정체되었다 믿고 싶지 않은 나(꼰대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나)와 정체된 나(꼰대인 나)의 사이를 왔다 갔다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 안 그러고 싶은데 자주 의기소침해진다.
새 직장을 힘들게(!) 구하면서 이젠 잘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내 능력은 더 여의치 않고. 아마 직장인들이라면 다들 비슷하겠지. 나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에잇, 쓰고 털어버려야지.
180920
아침부터 회사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에서 뭔가를 촬영한다는데,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바삐 움직인다. 기웃기웃. 사방을 궁금해하며 보이는 사람들에게 질문하다가, 짜증 나서 관뒀다. 모두 바빠 보인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게 있다. 이 회사는 정말이지, 뭔가 새로운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하던 대로 한다. 이유는 '바쁘니까.' 설명을 해주고 역할을 주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래서 새로 들어온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들이 꽤 있다. 물어보면 대답 안 해줄 사람이야 없겠지만 실제로 다들 너무 바쁘다. 그러니 요샌 나도 손을 놓아버린다. 그래, 설치지 말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오늘은 진짜 진짜 바빠 보인다. 자주 텅 비어버리는 사무실 안에서 혼자 하루 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점점 몸도 맘도 찌뿌둥해졌다.
한없이 까라지던 컨디션은 의외의 포인트에서 전환을 맞이한다. E의 이름을 부르며 쿠팡 맨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평소에 택배를 받는 E도, E 옆자리 J나 S도, 모두 자리에 없는 걸 알고 부리나케 달려 나가 택배를 받았다. 쿠팡 맨이 반품도 달라 신다. 음. 반품은 어디에 있을까. 물건이 켜켜이 쌓여 있는 사무실을 뒤적여봤지만 혼자는 역부족이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바쁜 사람 귀찮게 하지 않고 혼자 찾아보겠다고 허둥대다가 결국 E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말이지. 쿠팡 맨에게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큰 소리로 E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왔다가 반품을 가지고 나간 시간, 길어야 5분 남짓. 웃으며 들어와 웃으며 큰소리로 인사하고, 웃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웃으며 기다리시고, 다시 웃으며 인사하고 나가셨다. 쉽지 않은 배송 일을 성실하고 기분 좋게 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빙그레 웃는다. 열심히 하는 사람의 기분 좋은 에너지가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력이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습관적으로 다운되던 감정을 멈추고 습관적인 방향으로 내딛는 발을 멈춘다.
180921
추석 연휴다. 조기 퇴근했고, 연휴 뒤로 이틀, 드디어 드디어 입사 후 첫 연차를 냈다.
친구들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아- 달콤한 연차의 맛. 그래, 바로 이 맛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