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 못하고 터트려 버린 서툰 마음
180827
성급하게 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터트렸다. 좀처럼 머금고 있는걸 잘 못하고, 터트리고 해결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서... 어설프게 터트렸다. 어쩜 이리 서툴까. 좀 세련되고 매끄러운 사람이고픈데, 나는 늘 내 예상보다도 훨씬 거칠고, 서투르다. (아직도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나 보다.)
업무를 하면서 느낀,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업무 체계에 대해 대표에게 건의를 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분명, 하고 싶은 말들이 있으면 편히 하라는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믿고 말했는데 막상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단호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말인즉슨, 내가 너무 이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거다. '좋은 체계'라는 건 누구라도 얘기 못하겠냐는 거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현재의 상황으로는 바뀔 수 있는 게 없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은 바꿀 생각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매번 '효율'을 첫 번째로 내세우는 대표에게 말하고 싶었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조금씩 체계를 잡아야 효율이 극대화되지 않나요.' 다시 한번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려 했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상대가 마음의 벽을 높이 쌓는 게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다.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느낌. 그래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대표는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일어나겠다고 하고는,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찝찝하고 서글픈 마음이 드는 퇴근길엔 가족만 한 약이 없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조카들을 바꿔 받았다. 실컷 헤헤거리며 통화를 하고 나서 언니를 바꿔 받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일러바쳤다. 언니가 천천히 말을 고르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좀... 참지.”
맞다. 참았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대표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이제 막 굴러 들어온 돌이 회사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 회사의 한계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건, 나보다 대표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건 알지만 신입 사원의 건의에 대해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세련되고 차분하게 꺼내놓았으면 나았을까. 내 방식이 서툴고 투박해서 그랬나. 그리고 결국에는 참을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오는 마음에다 대고 주문 같은 말을 건네 본다. '그럴 수 있지' 남에게는 참 잘도 해주는 말을 나에게도 건네 본다.
'그럴 수 있지, 못 참을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서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뭐 좀 거칠 수도, 세련되지 못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뭐.'
180830
(...) 내가 했던 말이 살짝 누락되거나 오해되는 정도가 아니라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반감 같은 게 아닐까.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반만 말하면 인과가 바뀌잖아. 말을 전하는 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사실이나 메시지를 반만 말하거나 순서만 바꿔 전해도 완전히 다른 말이 되잖아. 결과적으론 내가 했다는 그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닌 게 되는 거지. (...)
<악스트 Axt>, 편혜영
악스트 매거진에 실린 편혜영 작가 인터뷰의 어느 대목을 읽는데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했던 말이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은 걸 넘어서... 다른 말로 전달된 것 같다.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니었다, 그건. 더 잘해보자고 내 불편한 감정과 상황을 전달한 건데 내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니 상황이 이보다 더 불편할 수가 없다. 마치 공격처럼 들린 걸까. 방어태세가 생각보다 굳건하다.
입을 닫은 채 며칠이 지났다. 오늘 동료 S가 그런다. 너무 위축되어 있어서 보기에 안타깝다고. 위축되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데, 그 순간 정말 온몸이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딴에는 또 정확히 전달하지 못할까 봐, 오해받을까 봐 입을 다문 것뿐인데 누군가의 눈에는 위축되어 보이는가 보다.
아 이게 위축된 건가. 이런 상태로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굳이 모든 감정을 해결하지 않아도,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180831
회사에서 제일 가까워진 동료, 내가 제일 많이 의지했던 동료 S가 두 달 동안 해외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그녀의 화분에, 내가 물을 주기로 했다.
180904
2시에 대표 인터뷰를 하기 위해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온 인터뷰어의 얼굴이 낯익다. 나도 모르게 방문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쪽도 나를 빤히 들여다보다 눈이 똥그래진다.
“언니!”
나를 언니라 부르는 그녀는, 예전에 같은 교회를 다니며 알게 된 한참 어린 동생이었다. 나도 그녀도 각각 교회를 옮기는 바람에 이래저래 몇 년만의 만남이었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대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모르고 살다가, 이리 번듯하게 일을 하며 사회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동생을 만나니 이렇게나 대견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와락 안아 등을 두드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동생이 인사를 하러 다시 들어왔길래 따라 나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그녀가 흥분한 목소리 말한다. 이 회사가 나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