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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Jul 02. 2019

뭐 그리 마냥 좋기만 했겠어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외로웠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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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 강연을 들으러 가야 해서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여유 있게 퇴근해서 버스 정류장에 이미 도착했는데 '띠링' 메신저가 울린다. 지금, 입사 1주년 된 E의 서프라이즈 파티를 할 예정이니 멀리 안 갔으면 올라오란다. 고민 안 하고 다시 돌아 올라갔다. 제일 어린데도 늘 사무실을 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이다. 정말 진심으로 E의 1주년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녀 덕분에 내가 회사에 1%라도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으니까.


자율 출근제가 있어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야근 때문에 10시에 출근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10-7시에 맞춰서 회의를 잡거나 이벤트(?)를 진행한다. 내 오늘은 올라간다만 확실히 말해둬야겠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이벤트는 좀 일찍 하는 게 좋겠다고. 


서프라이즈 1주년 축하를 해주고 다시 부랴부랴 강연장으로 향했다. 강연 시간에 맞춰 가기는 글렀고, 왔다 갔다 시간을 보낸 탓에 피크 퇴근 시간에 딱 맞춰 버스를 탔다. 도로도 버스 안도 빽빽. 만원 버스에 시달리면서도 쑥스러운 듯 기뻐했던 E를 생각하니 다시 '올라가길 잘했다' 뿌듯한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아 그런가 다 아름다워 보이고, 내가 타고 있는 버스 노선이 아주 그냥 도심 드라이브 코스 같다. 건물 사이로 떨어지는 도심의 일몰도 꽤 장관이고. 늦어버린 강연이고 만원 버스고 뭐고, 다 잊을 만큼 충분히 괜찮은 오후였다. 


내 기분 마치 꽃 봉오리 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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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면서 화장실에서 얼굴 봤는데, 낯빛이 너어무 어둡다. 이런 말 하기 싫은데 10살씩 차이 나는 다른 직원들과 너무 비교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수정 화장은 하지 않는 서른여섯의 신입 사원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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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무엇이든 해야 좋은 거고, 사람은 좀 바빠야 좋은 거고, 이왕이면 모두와 함께 즐거운 게 좋은 거고, 뭐든 더 있으면 좋은 거고, 인정은 받아야 좋은 거고. 좋고 좋고 좋고. 내가 생각하는 ‘좋음’의 기준이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 좀 넓어지고 싶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모두 그럴 거다. 말하는 대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거다. 암만, 나만 이렇게 어려울 리 없다. 그러니 남의 모자란 행동에도 이죽거리지 말자. 




180824 


퇴근길,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회사에서 나와서 걷다가, 길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욕을 해봤다. 

아 XX 짜증 나. (욕을 잘 못한다. 마음먹고 해 봤다.)


너무 짜증이 나서 계속 눈물이 뚝뚝 났다. 그러다가도 내 감정에 대해 점검을 했다. 뭐 그리 또 눈물까지 날 일 인가, 이렇게 속상해할 일 맞는가를 되짚어 봤다. 가만가만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더듬어 보니, 그 끝에 나 혼자 외로운 마음이 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하며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긴장했던 마음이 손 끝에 차갑게 만져진다. 외로워? 애도 아니고 진짜 사회 초년생처럼 굴기 있냐? 직장 생활이 뭐 친목 도모도 아니고. 


_


외로움의 의미를 찾아봤다.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는 혼자가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 적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였을 때 등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위키백과에 나온 외로움의 정의를 읽으면서 또 끅끅 울었다. 맞아 나 외로웠어. 엉엉. 그러게 그랬겠네. 마냥 좋기만 했겠어. 마냥 신날 일만 있었겠어. 이제야 끌어안고 어디고 마구 토닥여줬다. 뭐든, 조심하지 않고 편히 나눌 곳이 필요했다. 


카톡 목록을 훑어 마음이 가닿는 이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 말이나 꺼내놓기 어렵지 않은, 허겁지겁 불러낸 이의 온기가 따수워서 웃다 울다가 또 웃었다. 


더위와 새 직장을 동시에 겪어내느라 마음에 조금도 여유가 없었다. 버티는 게 전부였던 여름, 이제 더위는 한풀 꺾였고 새 직장은... 일단은 올라탔으니 당분간은 항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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