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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Mar 02. 2020

애매함에도 익숙해져 간다

어쩐지 점점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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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겨울에는 피곤이 더 진한 느낌이다. 버스에서 노곤하게 잠들었다 내리니 바깥바람이 너무 차게 느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데 목련 봉오리가 보인다. 아. 벌써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는 작고 작은 봉오리들. 뭔데 또 울컥한다. 


그치 이 연말이 끝은 아니지. 그치 우리에겐 또 내년이 있지. 계속 살아야 하니 봄을 준비해야지. 약해져 있을수록 겨울은 길고 추운 법이니, 더 힘을 내야지.


쨍 하니 추운 어느 날, 운동장에서 해 넘어가는 걸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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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맡았던 프로젝트 펀딩이 끝났다. 배송까지 모두.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업무가 새로웠다. 이렇게 마무리를 해놓고 내일부터는 페어 부스, 현장에 나간다. 하루 종일 STAFF 목걸이를 걸고 부스에 서 있을 예정. 명함도 백 장이나 챙겨뒀다. 아아아- 완전히 새로운 일상들이다. 오늘도 새로운 별로 출근했다가, 퇴근했다. 그러게, 여긴 완전히 새로운 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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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에서 직접 만난 고객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잊히질 않는다. 역시 나는 현장 타입이지 말입니다. 그나저나 자꾸 애사심이 생겨서 큰일이다. 내가 고생한 건 생각이 안 나고 실수한 게 너무 속상하고 더 잘하지 못한 게 생각나 속상하다. 이건 안 좋은 징조야. 


회사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제품을 사간 모든 사람들이 기대만큼 유용하게 쓰게 되면 좋겠고. 명함을 주고받은 모든 곳들과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일이다. 자꾸 애사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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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절로 어찌 살았는가 돌아보게 된다. 한 해 동안 내 이야기 속에 나만 있지 않았기를 바란다. 누군가와 함께 울고 함께 웃었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싶다 한들, 내가 먼저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기쁨을 나누고 싶은 사람, 슬픔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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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부터 갑자기 윗입술이 팅팅 부어올랐다. 욱신거리고 물집이 점점 늘어났다. 피곤해. 저녁 9시도 안되어서 잠이 든 것 같다. 뜨끈뜨끈하게 불을 올리고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입술이 띵띵 부어 있다. 이제 쓰라리기까지 한다. 출근을 했다. 윗입술 하나 욱신거리는 것뿐인데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동료가 내 입술을 보더니 헤르페스라고 약 바르고 약 먹고 쉬면 된단다. 약 바르고 약은 먹었는데 일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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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들 연차 부자. 그동안 얼마나 일만 한 거야. 연말에 어떻게 쉴까 이리저리 기쁜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연차가 딱 하루 남은 나는 12월 만근을 결정했다. 24일도 26일도, 31일도 꽉 채워 출근할 테다. 많이 바쁜 건 아닌데 뭔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크게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모든 프로젝트에 걸쳐 있는, 애매한 상황에 애매한 위치다. 그리고 입사 때부터 이어진 이 애매함도 조금씩 익숙해지긴 한다. 


조중균 씨는 매일 야근했다. 하루에 겨우 예닐곱 장의 교정지가 넘어올 뿐이라서 정작 나는 정시에 퇴근했다. 내일 봐요, 하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면 조중균씨는 일어나 자기 자리만 남기고 사무실 형광등을 모두 껐다.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조중균의 세계>, 김금희


조중균씨가 텅 빈 사무실에 불을 끌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깜깜한 사무실 안, 아늑하게 불을 밝힌 원고가 잔뜩 쌓인 작은 책상을 떠올렸다. 근사해라. 야근이 근사할 수가 있다. 급하게 결심해본다. 야근이 많은 우리 회사에서 나 홀로 야근은 무리다. 나는 일찍 출근하는 편을 택하기로. 내 자리에만 조용히 불을 밝히고 일을 해야지. 

휴가로, 행사로 모두가 어수선한 12월을 나는 그리 마무리해야겠다.


앙상한 겨울의 가지도 좋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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