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항재 Jun 07. 2020

집중

혼자서는 못하지만 같이라서 할 수 있는 집중하는 힘에 대해서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OKR을 채택하고 있다.  

OKR 도입을 진행하면서 관련된 몇 가지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크리스티나 워드케에 Christina Wodtke의 책이다. 한국 번역서의 제목은 "구글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OKR"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마케팅과 홍보 효과를 내기 위해 구글과 OKR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제목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제목은 "Radical Focus"다. 

OKR을 도입한 많은 회사들(내가 있는 곳을 포함해서)이 처음에 OKR을 접하면서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도대체 OKR과 기존의 MBO 방식의 KPI 관리가 뭐가 다르지?'라는 점이다. 

만약 나에게 그 차이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선택과 집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방금 언급한 크리스티나 워드케의 책 제목과 부합될 것 같다. 


원초적 집중


'집중'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좀 오래되었지만, 몇 년 전 읽었던 또 다른 경영서적이 생각이 난다. 바로 "원씽, The One Thing"이라는 책이다. 

한국어 번역서의 부제는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단순함의 힘. 한 가지에 집중하라!"라고 되어 있다. 

책 제목에서 저자의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바로 알 수 있다. 

내가 만나본 리더들 중 절반은 무엇을 해야 할지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그만둬야 할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피터 드러커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워렌 버핏의 3단계 생산성 향상에 대한 조언이 비슷한 맥락이다. 

첫째, 25개의 목표 리스트를 작성하고 둘째, 가장 중요한 5개의 목표를 선정한다. 셋째, 그리고 나머지 20개의 목표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


5개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대한 관리만큼이나 20개의 중요한 목표에 초점이 분산되지 않도록(Distraction) 하는 것이 실제로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인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말은 쉬운데 왜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가?

시간관리와 To Do 리스트 관리, 조금 더 거창하게는 프로젝트 관리를 도와주는 각종 도구와 스마트 폰, 패드, 그리고 스마트와치에 앱을 깔고 매일 같이 업데이트에 설정... 결국 우리가 이렇게 에너지를 들이고 도구를 쓰면서 뭔가를 관리하는 그 목적은 하나이지 않을까? 바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

그런데, 체크리스트와 해야 할 일 목록을 관리하다 보면 집중해서 관리해야 하는 그 어떤 것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동일한 리스트 안에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안에 결과를 내야 하는 중요한 해결과제와 이번 주 금요일까지 내야 하는 공과금 고지서 처리가 모두 같은 To Do List안에 있는 것이다.


손해보고는 못 살겠다는 심리


One thing이라는 책의 저자는  "성공은 철저한 자기 관리에서 온다"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현재 시간관리 도구, 각종 할 일 목록을 관리하고 있는 심리적 무의식에 대해 지적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 완벽성의 추구. 

다른 각도,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손실 회피의 성향"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실험 A

앞문과 뒷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앞문으로 나가면 10만 원을 받는다. 

뒷문으로 나가면 동전을 던지는 기회를 갖게 되고 앞면이면 20만 원, 뒷면이면 그냥 가야 한다. 

어떤 문을 선택할 것인가?


실험 B

실험 A와 동일하게 앞문과 뒷문을 선택한다. 

단, 이번에는 앞문의 경우 10만 월 내가 내야 한다. 

뒷문을 선택하면 마찬가지로 동전을 던진다. 앞면이면 20만 원을 내야 하고, 뒷면이면 돈을 낼 필요 없이 그냥 갈 수 있다. 


실험 A에서는 대다수 실험 참가자들이 앞문을 선택한다. 

실험 B에서는 대다수가 뒷문을 선택한다. 

바로 이것을 행동경제학 또는 행동심리학적 관점에서 '손실회피 성향'이라고 명명한다. 

사람들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확정적인 것을 선택하고, 손실은 가능한 회피하고 싶어 한다. 

손실이 예상되면 더 큰 리스크가 있더라도 손실을 피할 수 있는 어떤 조치(예를 들어 동전을 던지는)를 시도해 보고 싶다. 실험 B에서 앞문으로 나가면 10만원 손실로 그치지만 많은 사람들이 뒷문을 선택해서 동전을 던져보고 그 10만원을 내지 않을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이다. 

통계상 손실의 10만원이 주는 고통은 10만원 이익보다 2.5배나 크다고 한다. 

즉, 실험A에서 뒷문을 선택하고 동전 던지기로 25만원 이상을 얻을 수 있다면 확정적 10만원 이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손실 회피 경향은 우리로 하여금 불확실하지만 집중하고 노력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더 큰 이익(성공) 보다는 약간의 관리를 통해서 확정되어 있는 시간과 돈을 방어하는 쪽으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집중해서 완수해야 하는 프로젝트와 놓치면 다른 사람의 컴플레인을 듣거나 귀찮아지는 것들이 같은 리스트 안에서 관리되는 것이다. 


워렌 버핏이 가장 중요한 5개의 목표가 아니라 여전히 중요해 보이는 20개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은 바로 이런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 '지혜'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20개의 나머지 것들에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들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처음 것에 대한 집착


당신이 만약에 어느 피자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이 피자집에서는 12가지 토핑을 다 얹어 놓은 3만원 짜리 피자를 보여주며 원하지 않는 것은 빼주겠다고 한다. 

토핑이 빠질 때마다 피자 한 판의 가격도 다시 조정되어 내려가게 된다.

또 다른 피자집에서는 반대로 아무 토핑도 올라가 있지 않은 도우를 보여주며 토핑을 추가할 때마다 가격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결국 어느 가게의 피자 가격이 더 비쌌을까?

예상한 바와 같이 처음부터 12가지 토핑을 다 올려놓은 피자가 평균 6개의 토핑을 선택하게 되고 제로에서 시작하는 경우에는 평균 2.5개의 토핑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르는데 초기에 주어진 대안에 집착하는 경향으로 인해 어떤 선택에 영향을 받는 경우를 뜻한다. 

위에서 예시한 정박효과나 손실 회피 성향은 모두 결국 인간의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이라는 본성과 연관이 있다. 

 

변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 '함께 한다'는 것의 힘에 대해


다시 회사, 조직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보자.


OKR은 Objective, Key Results를 단축한 단어로 목표관리에 대한 방식이며 방법론이다. 

초반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OKR의 철학 중의 하나는 바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집중은 개인이 아니라 소속된 그룹, 단체, 개인이 조직의 목표 하나에 정렬되어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각각 주요 결과를 주도적으로 정의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 바로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의 의미를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인식, 동의하는 바로 그때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겪게 되는 회사의 어려움, 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동시에 달성하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는 그 모멘텀이 OKR의 핵심이며 성공을 가르는 분깃점이 된다. 그 공통된 인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이후의 과정은 이전과 같은 습관적인 탑다운의 KPI 관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여러 가지 관리해야 하는 지표들 중에서 왜 우리는 이번 분기에 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그 결과를 추적, 관리하기로 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Bottom up의 하부 조직, 개인의 자발적 주도적 목표 설정과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집중과 이를 위한 다른 것들에 대한 포기는 결국 좀 더 고귀한 목표와 사명에 대한 공동체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집단의, 그룹의 힘으로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체중을 줄이는 다이어트 이든, 생활 습관을 고치기 위한 노력이든 먼저 왜 이런 목표가 나에게 중요한지를 적어보자. 그리고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대상을 나 자신을 넘어서서 나의 가족, 부모님, 또는 좀 더 크게는 사회나 세상까지 확대해서 보자. 나의 영향력의 범위를 넓게 볼 수 있고 그를 통해서 혜택을 받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생각하게 되면 내가 설정해 놓은 목표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왜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명감이 생길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Tip은 주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보자. 우선 자신이 목표로 하는 집중해야 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에 정말로 집중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도록 시키는 방법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간단하게 문자나 톡을 보낼 수도 있다. 

가족이라면 저녁에 집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는 그 시간일 수도 있다. 

"목표로 했던 것을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했나요?"

정해진 시간에 이 질문을 의무적으로 받는 것으로도 집중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혼자라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간다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2019년 6월, 전 그룹사 리더들이 참여하는 팀워크 이벤트가 열렸다. 


중국의 고비 사막에 들어가서 2일간 총 56km를 도보로 행군하는 행사였다. 안전을 위해서 전문 이벤트 회사와 관련된 전문 조교들이 같이 참여했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이 하루 25km 이상을 걷는 것, 그리고 사막 기후답게 기온은 35도를 넘나들고, 습도는 5%가 안 되는 특수 상황이었기에 누구도 완주를 자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실제 행사를 마칠 당시에는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무사히 정해진 거리를 완주할 수 있었다. 

비록 마지막 날 한 명이 결승점을 지나고 나서 호흡곤란으로 병원 응급실로 가기는 했지만 기적같이 60여 명에 가까운 모두가 무사히 행군을 마쳤다. 이 중에 여성 참여자 비율이 50%에 육박했다는 것도 특이할 만했다. 


"혼자서라면 절대 할 수 없었지만 같이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조금 뒤로 처지는 조원이 생기면 모두가 같이 걷는 속도를 조정하고 짐을 나누어 들기도 하면서 서로 격려하며 포기하지 말자고 했어요."


단 하나의 목표, 행군의 완주.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팀원들이 집중하여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조금 약한 누군가를 보듬으며 같이 길을 걷는 것.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다 같이 완주의, 목표 달성의 기쁨과 성취감을 나누는 것. 모두가 같이 승자가 되는 것.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진정한 맛이고 멋이 아닐까?



※행동의 변화를 통한 더 나은 삶에 대해서는 코칭의 Guru로 유명한 마셜 골드스미스의 2016년 발간된 '트리거'라는 책을 추천한다. 번역상에 아쉬움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제목 그대로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기 위한 여러 가지 실제적인 가르침이 가득하다. 



작가의 이전글 No Rules Rul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