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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킴 starkim Feb 02. 2018

육아휴직을 결심하다

작년 겨울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다. 가족과 만날 수 있는 주말을 앞두고 있었기에 마음이 바빴다. 우리는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였다. 우리에게 주말은 너무나 짧고 소중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급한 마음으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몸이 공중에 꽤 오래 떠 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후방 낙법을 쳤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남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게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방송국 앞이었다. 누가 알아봐도 비웃지는 않겠지?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가벼운 사고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움직일 수도 있었다. 교통사고 확인 차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뇌 CT 등을 찍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은 없었다. 주말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집으로 향했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부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셨다. 문자를 남겼다. 한참 뒤에 ‘몸조리 잘하고 월요일에 보자’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평소처럼 사무적으로. 교통사고라는 게 이렇게 별일 아닌 거구나. 교통사고가 처음이었기에, 부장님도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기에 정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주말을 보내고 새벽 뉴스 진행을 위해 광주로 향했다. (나는 세 번째 발령을 받고 현재 KBS 광주방송총국에서 근무 중이다)

새벽에 TV 뉴스를 진행하고, 라디오 생방송을 마쳤다. 갑자기 어지러웠다. 뭐지? 잠이 부족했나? 내 소식을 접한 선배들은 ‘교통사고 났다면서 입원은 안 하고, 왜 여기 있는 거냐’며 놀랐다. 나도 놀랐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입원을 해야 하는구나. 난 입원을 했고 뇌 MRI를 찍었다. 교통사고 확인 차 가볍게 찍었던 뇌 CT에서 종양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윤슬이, 그때는 태명이 ‘봄이’였던 딸을 만나기 두 달 전 일이었다.


‘입원하지 말까?’

처음에는 병원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내가 하고 있는 방송들이 걱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방송국에서 방송을 제일 많이 하고 있었다. 그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아 PD연합회에서 주는 ‘TV 진행자상’까지 받았던, 어쩌면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 겉으로는 말이다. 일 욕심도 많았지만, 그때 내겐 나보다 방송, 회사가 더 소중했다. 방송에 대한 걱정으로 입원을 고민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입원한다며? 입원할 때 하더라도 병가는 직접 와서 내도록 해요. 진단서와 함께. 그리고 혹시 진단서 내러 회사 올 거면 내일 새벽 뉴스 좀 진행하면 안 될까?”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무적인 내용. 교통사고로 입원을 앞둔 사람에게 내일 생방송을 강요하는 부장님의 전화를 받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나보다 방송과 회사를 먼저 생각했는데….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받은 그 전화는 입원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입원한 병원은 발령지인 광주에 있었다. 바로 MRI를 찍을 수 있다는 말에 혼자 입원해서 뇌 MRI를 찍고 정밀 검사를 했다. 처음 보는 MRI 기계의 웅장함과 시끄러운 굉음에 압도됐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평소에 말을 잘 듣는 성격이었다.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잘 살아왔는데, 지금 내가 여기에, 혼자, 왜 누워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간호사의 당부가 다시 떠올랐다.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을 하면 그대로 MRI에 찍혀 나올 것만 같았다. 숨 쉬는 것조차 어색하고 불편할 만큼 병원이란 곳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 딸 봄이를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비로소 가족에 닿았을 때, 두려움이 몰려왔다. 많이 무서웠다. ‘만약’이라는 부사와 함께 떠오른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평소 안구 건조 때문에 눈물도 없던 나였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아내, 가족, 소중한 사람들. 무엇보다 두 달 후면 만나게 될 우리 딸 봄이를.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너무도 명확했다.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내 삶의 모든 기준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비로소 가족에 닿았을 때, 두려움이 몰려왔다. 많이 무서웠다.



참 낯설고 무서웠던 사진. 덕분에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해면성 혈관종. 처음 듣는 단어였다. 모르는 단어가 주는 공포. MRI 결과를 말씀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선생님의 미소는 온화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종양의 정체는 뭉친 혈관이었다. 혈관이 뭉쳐져 있는 정도에 따라 CT상에서 종양처럼 보이기도 한단다. 선생님을 와락 끌어안을 뻔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술이나 스트레스 등은 앞으로 더 조심해야 했지만,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교통사고 후유증을 고려해서 가벼운 뇌진탕 진단과 함께 2주 입원 진단을 받았다. 바로 입원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통원치료가 번거롭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내가 출근한 고요한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했다.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결론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함께하는 삶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더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의 가치와 방향이 명확해졌다.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해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도 동의했다. 가족과 함께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꼭 아나운서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꿈이었던 아나운서였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면 포기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민하고 시도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힐 때쯤,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확실한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는 게 너무 아까웠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참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아왔다. 혼자 살 때는 나를, 결혼을 결심하면서는 아내를,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를 사랑하는 시간. 크지만 불확실한 성공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 끝에서 난 이렇게 오늘도 사랑하며 살고 있다. 충분히 행복하게. 이 책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사랑한 시간의 고민이자 흔적이다. 나름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육아대디의 성장기이자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분투한 시간의 기록이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내게 정답은 '가족'이었다.




이 책은 
나름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육아대디의 성장기이자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분투한 시간의 기록이다.



<라테파파> KBS 김한별 아나운서의 육아대디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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