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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킴 starkim Feb 09. 2018

라테파파, 육아대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근무지의 짐까지 모두 정리했다. 의지는 확고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막함.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회사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는 압박감.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봐, 오히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될까 봐 걱정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혹시 이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가장 컸다. 주변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서 선택이 더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육아휴직을 결정한 이유도, 목적도 명확해졌다. 두려움 때문에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그리워만 했던 가족과 실제로 함께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평일에는 자주 아팠다.

평소에 감기조차 걸리지 않던 내가.

그런데 주말에 가족과 있으면 아무렇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건강한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진짜 나.

내게 지난 7년은 그 과정의 반복이었다.

아픔과 치유의 연속.

일종의 상사병.

함께 있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그동안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가족과의 시간.

7년이 지나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서야 허락된 시간.

지금은 육아휴직 전 마지막 방송을 앞둔 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을 뿐이다.

지지고 볶고 힘들더라도

‘남들처럼’ 살고 싶을 뿐이다.

가족과 함께.

단지, 그것뿐이다.


육아휴직을 하루 앞둔 날의 일기. 육아휴직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땐 그랬다. 하지만, 육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정말 너무 어려웠다. 일단 내 몸이 육아를 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첫 날. 나는 윤슬이보다 먼저 잠들었다.


바로 전날까지 난 새벽 뉴스 앵커였다. 새벽 뉴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시간을 산다. 기상 시간은 보통 새벽 4시. 준비할 것이 많은 여성 앵커나 사전 녹화를 해야 하는 날에는 더 일찍 일어난다. 남들이 잠에서 깨는 시간에 ‘오늘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이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늘 시간에 쫓기는 일상.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저녁 8시가 되면 몸이 반응한다. 하품이 밀려온다. 눈꺼풀은 무겁다. 남들보다 3~4시간 정도 일찍 시작한 하루이기에, 저녁 8시는 내게 밤 11시~12시로 느껴진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난 3~4시간을 먼저 살고 있다. 일종의 시차가 있는 것이다. 가끔 오후나 저녁 시간에 녹화가 있는 날도 있었다.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은 시간을 살던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해 하루아침에 보통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전날까지
난 새벽뉴스 앵커였다.
내 몸은 육아를 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다.



새벽 뉴스 생활로 시차가 바뀌어 있던 나는 윤슬이가 자기도 전에 잠들기 일쑤였고, 아내는 나와 윤슬이를 모두 돌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냈는데, 오히려 내가 짐이 되는 상황이었다. 100일이 안 된 딸만으로도 힘겨운데, 37세의 아들이 하나 더 있는 상황. 나는 조심스러워서 아이도 제대로 안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의욕만 앞섰지, 육아를 하기에 난 참으로 부족한 게 많았다. 미안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몸을 만들어야 했다. 육아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을 시작했다. 열심히만 하지 않고, 완급 조절을 하기 위해 틈틈이 쪽잠도 잤다. 적어도 아이보다 먼저 잠드는 일은 없어야 했다. 바뀐 시차를 빨리 돌려놔야 했다. 육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주 조금씩 적응되어 간다는 점.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아이와도 조금씩 호흡이 맞아갔다. 척하면 척, 딱하면 딱. 짜릿했다. 이게 뭐라고 아이의 패턴에 내 몸이 적응할수록 기뻤다. 몸도 마음도 변해간다. 아직 많이 미숙하지만, 조금씩 육아가 늘어가는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아기띠를 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점점 편해졌다. 자연스러워질수록 뿌듯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육아대디로, 라테파파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분명 성장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육아 선배의 말이 맞았다. 역시 육아育兒는 육아育我였다.


육아를 통해 변해가는 내 모습. 그 모습이 싫지 않다.


육아 선배의 말이 맞았다. 역시 육아育兒는 육아育我였다.



<라테파파> KBS 김한별 아나운서의 육아대디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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