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 있음)

by shinystone

'스테이 홈'에서 '스테이 도쿄'로 넘어왔다지만, 아직 스테이 홈이던 시절 지루한 일상에서 나를 구원해 준 드라마 부부의 세계(aka. 또라이의 세계)를 끝까지 정주행했다.


중국인 유학생을 통해 소개받은 사이트에서, 나는 이 드라마를 방영 후 몇 시간 내에 볼 수 있었다. 자막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국인인 나에게 자막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 옆옆방에 사는, 몰도바 출신의 친구와 부엌에서 담소를 나누다 자연스레 '한국 드라마'로 화제가 넘어갔는데, 이 친구의 엄마가 부부의 세계를 (러시아 자막과 함께) 매화 챙겨보시는데, 딸에게 전화 통화로 20분에 걸쳐 에피소드를 완벽하게 요약해 주신다고 한다. 단, 줄거리를 들으며 엄마에게 역질문하지 않으면 '너 듣고 있어??'라는 일침의 질문을 받는다고.


내가 그녀에게 '지선우가 이태오랑 잔 거 여다경한테 말했어!(She told her that she slept with her ex-husband!)'라고 말해 버렸는데, 업데이트가 느려서 아직 못 보신 것 같다고. 하지만 엄마의 즐거움을 위해 자기는 스포일러 하지 않을 거란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굳이 꼽아 보자면, 고예림-손제혁 부부가 다시 잘 해보려고 하는 타이밍에 고예림이 손제혁을 다시 의심하기 시작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새벽에 손제혁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에 예민해진 고예림이 잠을 청하지 못하고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 당신을 사랑하지만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밤중에 오열하며 손제혁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며, 모순되지만 진실된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가에 관한 질문은, 이태오라는 캐릭터의 한결같은 처신을 보며 내 안에서 점점 흐릿해져 갔다. 드라마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경험 등이 연관이 있어 보이지만, 여기서 어줍잖은 분석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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