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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25. 2022

아직 어른은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스무 살이 넘어가면 정말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불과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였던 선배를 보며 이성적이고 안정적인 존재라고 느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 어른은 아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이와 다를 것 없는 나를 보며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감정적이고 불완전하며 조직에 잘 스며들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이성과 기분이 상하면 그만두고 싶은 감정 사이에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잘해보자 다짐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무기력함을 반복한다. 혼자 다독이며 겨우 일으키면 옆에서 주저앉게 만든다. 다시 해보자며 힘을 냈지만 타인의 한숨 한 번과 못마땅한 표정 한순간에 파도를 맞은 모래성처럼 저항 없이 무너져 내린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지'하고 넘겼지만 다섯 손가락이 넘어가면 머리에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다. 그럴 때면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뭔가요' 묻고 싶다. 숨을 내쉬면 뱉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말이 명치끝에 장전되어 있다. 훅하고 내뱉으면 무언가는 찢어낼 무기를 가만히 눌러낸다.


지금보다 참을성이 부족했던 때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자주 남겼다. 서툰 언어를 마구 휘두르며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관계의 밑바닥을 보았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보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따지기에 바빴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 위해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신은 틀렸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 갇혀서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으며 그 이상의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무런 노력도 없으면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이며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사실이 더 많음을 깨닫고 겸손해지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가 많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며 어리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음을 알고 배우는 일을 계속해가는 모습이 성장하는 사람인 것이다. 좋은 모습은 닮아가고 나쁜 모습은 경계삼아 나를 돌아보는 본보기로 삼는다.


숨만 쉬어도 먹는 것이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를 견디고 버텨내는 일도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가고 있다.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는 서로의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말은 아직 무겁고 내게는 먼 이야기처럼 여겨지지만 스무 살쯤의 시선에서는 내가 어른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학생 때와 별 다를 것 없는 정신연령에서 몸만 시간을 지나온 사람일 뿐이다. 아마 삼십 대가 되어도 오십 대가 되어도 겉만 익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사회가 기대하는 옷을 입고 꾸며도 나의 본질은 미성숙한 사람이다. 아직 어른은 아니기에 입은 옷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나의 숙제다. 완전한 어른은 세상에 몇이나 존재할까? 모두가 비슷하게 완성되어 가는 길에 있다면 조금은 더 서로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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