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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Sep 04. 2024

윤슬과 볕뉘

런중일기 12_네가 아름다운 건지 아니면,

여느 때에도 항상 아름다운 것이 있다. 바로 빛이다. 물 위에서 분해된 듯 반짝이는 빛은 윤슬, 작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은 볕뉘. 그 이름도 아름답다. 이 빛에 매료되어 종종 넋을 잃을 때가 있다. 기록 때문에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발을 멈추게 하는 빛들. 


달리기를 하러 가는 길에 먼저 볕뉘를 찾아 움직이고, 강에 도착해서는 윤슬을 따라 행방을 정한다. 어느 날은 왼쪽, 어느 날은 오른쪽. 어차피 돌아오는 길은 오른쪽이 되고 왼쪽이 되겠지만, 그때마다 끌리는 방향이 다르다. 나방이 빛에 홀리는 것처럼 나 역시 빛이 더 기우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 이런 아름다움을 좇는 것은 내 속에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고 싶은 바람 때문인 것 같다. 내 입술로 아름답다고 말하면 그것들은 속살에 피어난다. 흐드러진 꽃을, 명랑한 하늘을, 영롱한 달빛을, 강물 위 빛의 무리를, 나뭇잎 틈을 비집고 흔들리는 햇볕을 고르고 골라 담으면 내 속에도 그것들을 닮은 아름다움이 수없이 피어나리라는 주문을 건다. 소리 없이 반짝이는 마음이 한 가운데서 손끝까지, 발끝까지 찌르르 번진다. 온몸이 별이 된 기분. 그래서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라고 했던가. 


내 하루를 채우는 이런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못난 말들과 심술궂은, 화나고, 억울한 것들만 가득한 주위를 벗어나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 못난 것은 나와 별개의 것이 된다. 거리에서 온통 아름다운 것들만 주워 담으리라는 다짐으로 기쁨으로, 나를 닮은 나만의 행복으로 채워지는 소중한 순간이다. 


심리학자 '미하이'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내 행복의 척도는 마음에 차오르는 뿌듯함이라고만 오해하고 살았다. 객관적인 행복의 척도가 쾌활함만으로 측정될 수 없듯이 나의 행복도 그저 '뿌듯함'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긍심과 부드러움, 포용력과 공감, 환영 인사와 작별 인사, 약속과 부름 같은 것들도 제각각 행복의 모양을 담고 있다고 내 행복의 지도를 조금씩 수정하게 된다. 수정된 행복의 지도는 조그만 새싹에서 커다란 나무처럼 뿌리와 가지를 연장하며 아름다운 것들이 닿는 곳까지 멀리 뻗어나간다.



이런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생의 대부분을 사람을 미워하며 살았다. 내 존재 자체를 비난하기도 했다. 인간보다 지구를 더 사랑하고, 다른 생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며, 그렇게 사람을 증오했고,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2023년 8월 마우이섬에서 불이 났을 때 천 명이라고 알려진 실종자가 삼백여 명으로 줄었다는 기사를 보고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남편에게 맞고 사는 '현남'이 립스틱을 바르고 웃자 나도 따라 웃었다. 심지어 뉴스를 보고도 자주 운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구하고, 비범한 사람이 도전에 성공하면 그 한 줄의 글만으로도 감동하곤 했다. 사람은 사람 이외의 생명에 해가 되는 존재라고 비난하면서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존 소식에 이렇게 안도하곤 한다. 학살자를 증오하며, 수호자를 옹호한다. 두 얼굴이었던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웃고, 또 울고 있다. 참 복잡하게도 사랑하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너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나도 나름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빛나는 나의 마음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다다르니 더위가 한풀 꺾이며 노을이 더욱 주홍색으로 물든다. 주홍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을 따라 풍덩 뛰어들고 싶은 나날이다. 




* 미하이의 글: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의 척도를 쾌활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몰입의 즐거움』, 해냄출판사, 2005)

** 참 복잡하게도 사랑하고 있다: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의 작가의 말에서 따왔다.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이야기장수, 2022)

*** 여름의 끝자락: 김동률의 발라드곡 〈여름의 끝자락 (Feat. 김정원)〉에서 따왔다. 


2023년 9월 3일 일요일과 2024년 4월 17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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